[중앙포럼] 대통령의 시간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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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 부시정부는 취임한 지 이제 겨우 2주일밖에 안됐는데 무엇에 쫓기듯 하루가 멀다 하고 새 정책을 발표한다. 보는 사람이 숨이 가쁠 지경이다.

취임 며칠 만에 교육개혁안이 나왔다. 성적이 나쁜 공립학교는 정부 보조금을 끊고 대신 학부모가 그 돈을 받아 다른 사립학교로 자녀를 옮기도록 만들겠다고 한다.

***미부시의 성공한 일주일

경제에 다시 활력을 넣기 위해 10년간 1조6천억달러에 달하는 세금 감면 계획이 제시되고, 의료보험 개선계획도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왜 이리 바삐 서두를까. 권력의 시간표를 알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취임후 1년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언론이나 의회가 이 기간을 허니문 기간으로 인정해 줄 뿐더러 이 시기가 4년 재임 중에 대통령의 힘이 가장 강하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기대가 그런 힘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특히 취임 1백일 동안은 그 힘이 최상에 이른다.

부시를 포함해 모든 새 대통령들이 취임 1백일 기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다. 부시정부가 숨이 가쁜 이유도 이 기간을 허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회사 사장이나 대학총장은 일만 잘하면 얼마든지 오래 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힘이 더 붙을 수 있다.

그러나 임기가 한정된 대통령 권력의 속성은 취임 때를 최고봉으로 해 재임 4년 동안 계속 하향곡선을 긋는다.

그렇기 때문에 취임 2년이 지나 정권 하반기에 들어서면 미국 대통령들은 어떻게 힘을 재충전할까 고민한다.

가장 전형적인 방법이 외교다.

무슨 독트린을 발표하고 동서 화해, 중동 화해를 시도해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다시 모은다.

그러나 지는 해를 막을 수 없듯이 임기 말이 가까워지면 떠날 준비를 한다.

대통령이나 참모들은 어떻게 하면 국민에게 좋은 인상과 향수(鄕愁)를 남기고 떠나는가에 관심이 집중된다.

권력은 무한의 재화(財貨)가 아니다. 권력이란 돈과 같아서 쓰고 나면 없어지며, 일단 사용한 권력은 효력이 떨어져 다음에는 그 도수를 높여야 한다.

항생제가 내성(耐性)이 생기듯 권력 역시 내성이 생긴다. 독재권력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권력의 강도를 점점 높이다가 결국 파국을 맞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최선의 형태는 우리가 돈을 저축하듯 힘을 모으되 쓰지는 않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힘있고 능력 있는 대통령이다.

부시 대통령의 취임 후 행동을 보면 권력을 어떻게 축적하는지 엿볼 수 있다. 그는 첫 일주일을 거의 의원들과의 대화로 보냈다. 7일 동안 여야의원 90명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언론 매체들은 부시의 이러한 출발을 보고 성공한 일주일이라고 칭찬했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되는 레이건 대통령 역시 재임 4년 동안 70여차례에 걸쳐 여야 4백67명의 의원들을 만나 설득했다. 실패한 대통령의 대명사인 카터가 4년동안 만난 의원은 레이건의 4개월 동안에도 못미친다. 카터는 자기만이 도덕적이라는 오만에 빠져 있었다.

***권력 소프트 랜딩 생각할 때

올해 들어 우리는 강한 정부, 강한 여당을 다짐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어떤 이는 "석양 볕이 더 따갑다" 는 말을 하기도 한다. 종신제 대통령이 아닌 다음에야 정권 하반기부터 힘이 빠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계절을 거슬러 살 수 없듯이 권력 역시 이 계절의 숙명을 벗어날 수 없다. 임기 4년째로 들어가는 현 정부는 계절로 보자면 가을이다. 가을은 여름처럼 울울창창할 수 없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임기 말이 가까워질수록 강한 정부보다는 어떻게 하면 권력을 소프트 랜딩 시키느냐에 관심을 갖는 것이 순리다.

이를 거부할 때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고 국민은 불편해지는 것이다. 매번 정권 말이 가까워 오면 권력누수를 막는다며 개헌을 하자느니, 내각제로 해야 한다느니 별의별 소리가 다 나왔다.

그런 발상이 얼마나 헛된 꿈인가도 매번 보아왔다. 그럼에도 지금 역시 똑같은 소리가 나오니 권력은 과연 눈을 멀게 하는가 보다.

설혹 강한 정부를 고집한다 해도 그것이 검찰의 겁주기로, 국세청의 세무조사로 얻어지지는 않는다. 민주사회에서의 권력은 야당의 협조와 국민의 지지를 통해 축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창극 <미주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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