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6개월 현장 점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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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J내과의원.

설 연휴를 앞두고 부산에서 상경한 어머니(65)의 당뇨병약 처방을 위해 이 병원을 찾은 朴모(32)씨는 깜짝 놀랐다.

접수대에 앉은 간호사에게 "어머니의 처방전을 대신 발급받으러 왔다" 고 하자 의사가 아닌 간호사가 한달치 처방전을 만들어 준 것. "어머니가 이 병원에서 치료받은 적이 없다" 고 했더니 환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물었고, "주민등록번호를 모른다" 고 하자 생년월일만 처방전에 기록했다.

이어 朴씨가 요구한 '디…' 라는 약 이름을 적고, 의사의 서명 날인까지 2분 만에 끝냈다. 그리고 "의료보험증을 안 가져왔으니 1만원을 내라" 고 요구했다.

朴씨는 "의사는 만나보지도 못했다" 며 "간편하긴 했지만 꺼림칙하고 불안했다" 고 했다. 일부 소규모 병.의원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무진료 처방전 장사' 현장이다.

약국은 약국대로 처방전 없는 손님에게 전문약품을 팔거나 처방전을 멋대로 변경해 조제하는 불법이 여전하다.

29일 경기도 의정부시 D약국은 고혈압 약 10알을 요구한 기자에게 "이 약은 처방전 없이 사기 힘드니 넉넉히 사가라" 며 20알을 내줬다.

의약품 오.남용과 약화(藥禍)를 막기 위해 의약분업을 시행한 지 6개월. 그러나 '의사가 처방하고, 약사는 처방에 따라 조제한다' 는 가장 기본적인 규칙이 일선 현장에서 이처럼 무시되고 있다.

본사 취재팀이 지난 22일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병.의원 30곳과 약국 60곳을 표본으로 해 취재한 결과다.

9개의 병.의원이 "환자 가족" 이라고 한 기자에게 멋대로 처방전을 발급했다. 약국 중엔 10곳에서 처방전 없이 전문약품을 팔았다.

서울 강남의 한 내과 개원의는 "진료받은 적이 없는 환자의 보호자가 처방전을 받으러오는 경우가 하루에 4~5건" 이라며 "재정이 어려운 의원들에 한달에 1백만원 정도되는 처방전 수입은 적은 돈이 아니다" 고 털어놨다.

서울의 한 대형약국 약사는 "고혈압.당뇨병.류머티즘 등 장기 복용약을 구입하는 고객들에게는 처방전 없이도 약을 판다" 면서 "한달에 1백여명선" 이라고 실토했다.

보건복지부측은 "적발이 쉽지 않아 환자가 자신의 건강을 위해 이런 행위를 고발하는 자세가 요청된다" 고 말한다.

박경호(朴景鎬)의료정책과장은 "진료없는 처방전 발급이나 처방전 없이 전문약품을 파는 건 범죄행위로서 처벌받아야 한다" 고 말했다.

전진배.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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