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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피해 구제법안 폐기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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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언론관계법 중에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제안되었다. 법안은 언론에 의한 피해의 예방과 실효성 있는 구제제도의 확립을 주요 목적으로 삼고 있지만 공공복리의 증진이라는 이름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조항들이 꽤 많다. 미디어의 집중과 독점이 언론의 공정성을 제약할 수도 있지만 미디어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표현의 자유에 따른 자주적 인간의 행복 추구 활동을 위축시켜서도 안 된다. 몇 가지 문제는 꼭 짚어야겠다.

첫째, 언론사 내에 강제적으로 고충처리인을 두게 하는 것은 언론 옴부즈맨 제도를 지나치게 변형하여 언론인의 자율적 규제를 타율적 강제로 바꾸는 것이다. 일부 여론의 지적처럼 자체 심의제도의 의무화는 언론활동을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신문윤리위원회에 자율적으로 언론불만처리위원제도를 도입하여 시행 중에 있으므로 이 제도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먼저 할 일이다.

스웨덴에서 언론 옴부즈맨은 해당 언론사를 제외한 제3자 기구에서 언론자유와 개인의 인권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를 명예롭게 조정해 주는 제도다. 이를 수입한 일본은 신문 내용을 검토하여 자체 수정이나 반론 등을 수용하는 기구로, 미국은 각 언론사가 보도에 따른 고충을 자체 처리하는 기구로 사용하고 있지만 모든 신문이 이를 두고 있지는 않다. 간혹 언론사 내에 고충처리인을 두는 것이 편집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언론중재위원회는 신군부의 언론기본법에 의해 도입된 제도로 언론의 방자한 보도를 줄이고 반론보도와 정정보도를 효율적으로 성사시킨 공로가 있다. 이 위원회는 문화관광부 장관이 위촉한 중재위원들에게 언론 관련 소송 절차의 일부가 되는 언론중재를 맡기고 있고 방송발전기금이나 국고 등의 공공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반론이나 정정보도와 같은 제2차적 언론활동에 행정권이 사실상 검열주체를 형성함으로써 이미 위헌 결정이 내려진 영화등급위원회처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헌적 검열기관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법안에서는 더 나아가 법관이 판단해야 할 민법상의 손해배상청구까지도 이 위원회가 중재하게 하고 있다. 손해배상 소송의 중재가 저작권법상의 조정 제도를 원용했다고 설명하지만 사권(私權) 간의 분쟁인 저작권 분쟁을 언론자유와 명예훼손에 적용하는 것은 논리적 정합성이 부족하다.

셋째, 독자의 요구에 따라 언론사업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라는 것은 알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사라는 기업체의 경영정보를 공개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언론사 내 경영조직과 편집조직 간에 반드시 발생하는 내부 갈등의 자율적 조정 능력을 향상시키지도 못하면서 언론사들이 독자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려는 경쟁을 오히려 제약할 우려가 크다.

입법청원의 검토 과정에서 여당이 여론몰이 대신에 진정한 인권과 공익을 고려하여 명예훼손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지 않기로 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이처럼 여당은 좀더 마음을 열고 언론인이 자유롭게 정보와 지식의 생산에 필요한 창조성과 자주성을 펼칠 수 있도록 커다란 멍석을 깔아준 다음에 자율적으로 책임지지 못하는 언론에 한해 조속히 개혁을 다그치는 것이 더 잘하는 일이 될 것이다. 언론인들도 1964년 박정희 정권 치하에서 언론윤리를 법적으로 강제하려는 언론윤리위원회법의 시행을 저지한 전통을 이어받아 반드시 이 법 제정을 막아야만 윤리적 언론인으로서 시대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그래야 언론인을 포함한 모든 개인이 법과 윤리의 독립성을 인정하면서 더 높은 준법정신을 가질 것이며 '법 없이도' 더욱 자유롭고 책임있는 언론을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일상 건국대 교수.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