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타오르는 백의 궁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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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16강전
[제9보 (159~170)]
黑.송태곤 7단 白.쿵제 7단

일으켜세우기는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하루아침이다. 예전의 영화를 잊지 못해 분노에 찬 저항을 해보지만 그것이 오히려 사태를 빠르게 악화시킨다. 쿵제7단은 중국랭킹 1위의 기사로 361로의 오묘함을 터득했으나 오늘 단 한점의 돌을 아끼다 화려한 형세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실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바야흐로 백의 대궐이 초토로 변하고 있다. 그냥 집이 무너지는 게 아니다. 거꾸로 백의 생사가 풍전등화다. 159로 들여다봤을 때 160으로 이은 수가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후회와 당황.분노가 빚어낸 대실착이다.

박영훈9단은 이창호9단과 LG정유배 결승전을 두기 위해 중국으로 떠나기 전 이 판을 주의 깊게 놓아보면서 "실전이란 묘하네요. 고수들도 가끔은 자신도 모르게 어디론가 폭주해 버리거든요"하며 고개를 저었다.

박영훈은 160으로 '참고도' 백1 쪽을 이었으면 실전처럼 망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흑2 때 3으로 공격하면 귀의 사활은 어찌 될까. 흑이 4로부터 계속 조여 붙이면 패가 된다. 쌍방 죽고 사는 단패가 되는 것이다. 패가 싫어 한수 늦추면 빅이 된다. 바둑은 이미 흑 쪽에서 승기를 잡았다고는 하나 백도 중앙 대마를 노리며 최후의 일전을 결행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전 역시 패는 패지만 흑은 안전하고 백만 생사가 걸린 그런 패다. 소위 꽃놀이패다. 그 바람에 송태곤7단은 여유있게 169를 따내며 중앙을 보강할 수 있었으니 백은 깜깜한 절망이다(163=161,168=△).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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