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이 영어 번역소설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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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여고생 이지연(세종고 2년)양은 지난해 초 우연히 병원에 갔다가 정형 외과 대기실에 제 또래들이 줄지어 앉아있는 걸 보았다.저으기 놀랐다.

척추가 S자 등의 형태로 휘는 척추측만증 환자들이 생각 이상으로 많았던 것이다.얼마전 수술까지 한 친구의 얼굴이 오버랩되기도 했다.중학교 때 우연히 읽어뒀던 미국 인기작가 주디 블룸의 영어소설이 생각난 것도 그 때.

모델지망생인 척추측만증에 고생하는 13세 소녀가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을 발견하며 극복해간다는 감동 스토리였다.의사표현이 명확한 요즘 애들답게 지연이는 작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한국에도 척추측만증 환자가 있고, 대부분은 중 ·고생들입니다.『Deenie』를 제가 번역을 하고 싶습니다.”

몇 주 후 지연이는 “도와주겠다”는 블룸의 답장을 받았고 여름 방학 때부터 번역을 시작했다.식구들 몰래 학원 쉬는 시간까지 쪼개 번역한 글은 2권의 노트에 모아졌고 마침내 이달 초

『내 이름은 디니』(이채,8천원)로 출간됐다.

“제 번역이 서툴러서 재밌는 표현들을 제대로 살렸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춘기 소녀인 주인공이 엄마 ·언니 ·친구들과 겪는 심리갈등이나 성교육 문제 등은 제 또래가 읽으면 많이 공감할 거에요.”

지연이는 영어와 관련해 별도의 교육을 받지않은 국내산(産).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언니의 영어 실력이 부러워 언니 책꽂이의 영어책들을 읽은 것이 번역 실력의 바탕이됐다.

소설 내용도 볼만 하지만,요즘 10대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직접 생산에 뛰어드는 생비자(生費者)의 얼굴을 갖고 있음 이 책에서 간취할 수 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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