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170. 라루사 감독의 '즐기는 야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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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밤비노) 저주 시리즈'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내셔널리그 챔피언 결정전에도 볼거리, 얘깃거리가 많다. '로켓의 마지막 불꽃'으로 불리는 로저 클레멘스, 신들린 방망이 카를로스 벨트란, 그리고 이 글의 주인공인 토니 라루사 등.

카디널스 사령탑 토니 라루사(60). 그는 '인사이드피치'가 꼽는 현역 최고의 메이저리그 감독이다. 뉴욕 양키스 조 토레 감독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서운하거나 할 말이 많겠지만…. 그건 "어떤 색깔이 최고의 색깔이냐"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과도 같기 때문에 그냥 이쯤에서 덮고 가자.

라루사는 현역 메이저리그 감독 가운데 최다승(통산 2114승) 감독이다. 당연히 명예의 전당 헌액이 확실하다. 1989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정상으로 이끈 그가 카디널스를 정상으로 이끈다면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에서 모두 소속팀을 우승시킨 두 번째 감독이 된다. (현재는 스파키 앤더슨뿐이다)

그는 고교 졸업(1962년) 뒤 마이너리그 선수로 뛰면서 사우스플로리다 대학에서 산업경영학 학위를 받은 학구파다. 마이너리그 코치 시절에는 플로리다 주립대 로스쿨에서 5년 만에 학위를 땄고(78년), 변호사 시험도 통과(79년)했다. 역대 수많은 메이저리그 감독 가운데 변호사 자격증을 가졌던 감독은 라루사를 포함해 다섯 명밖에 없다. 그것도 1930년대 이후에는 라루사가 유일하다.

그는 야구 선수로는 별 볼일 없는 내야수였다. 그나마 어깨부상으로 제대로 뛰지도 못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단 한 개의 홈런도 때리지 못했다. 통산 타율도 0.199로 형편없었다. 그러나 야구에 대한 집념과 열정, 그리고 학구열은 누구보다 강했고 결국 감독으로서 최고의 위치에 올라섰다.

그는 이번 포스트시즌을 시작하면서 "이번에 우승하면 내년에는 무보수 감독을 하겠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올 시즌 카디널스와 계약이 끝나는 그는 내년에 당연히 초고액 연봉에 재계약을 할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프로=돈'으로 통하는 세상에서 돈을 받지 않고 일을 하겠다니.

그의 말이 약간 과장됐다고는 느끼지만 우스갯소리로 들리지는 않는다. 그가 성적에 따른 재계약, 더 많은 연봉 여부 등을 떠나 자신의 일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공자님 말씀이 생각난다. '지지자(知之子)는 불여호지자(不如好之子), 호지자(好之子)는 불여락지자(不如樂之子)'.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며,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뜻이라 한다. 얼마 전 박찬호가 한 말도 생각난다. 메이저리그 초년병 시절 운동장에 나갈 때면 자기는 이를 악물고 속으로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를 외치고 있는데 동료는 "해브 펀(Have fun.즐겨라)!"이라고 해서 당황했다는.

라루사의 여유. 승부를 초월한 경지. 피 말리는 승부의 세계에서 '어른'으로서 보여줄 만한 귀감이 아닌가 싶다.

<텍사스에서>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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