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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단독 중계와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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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럼에도 나는 SBS의 단독 중계를 비난할 생각이 없다. 아니, 오히려 MBC·KBS가 황금시간대 뉴스 프로그램에서 SBS를 비판하는 모습이 궁색해 보였다. 미국에선 아무리 큰 스포츠 이벤트라도 여러 방송사가 공동 중계하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이번 밴쿠버 올림픽은 NBC가 중계권을 따내 단독 보도 중이다. 수퍼보울(미식축구), 월드시리즈(야구), PGA 골프 등도 마찬가지다. ABC·CBS·폭스TV 등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방송사마다 손익계산을 통해 가능성 있는 싸움에 집중한 탓인지 주요 경기 중계권을 한 개씩 나눠 가지는 구조가 됐다. 미국은 이런 방식이 시청자의 다양한 선택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에 부합한다고 믿는다. 선택권을 침해하는 공동 중계는 대통령의 국정연설 등 공적 행사에 국한하고 있다.

SBS 단독 중계 논란을 보면서 보다 절감하는 것은 찬반을 떠나 우리는 아직도 경쟁 환경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SBS는 민영방송이다. KBS와 MBC가 성격은 다르다 해도 둘 다 민영방송은 아니다. 민영방송은 시청률을 높여 이익을 내야만 굴러갈 수 있는 구조다. 돈을 벌어 더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더 사랑받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회사 구조상 KBS나 MBC처럼 다른 탈출구나 완충장치가 있을 수 없다. 적지 않은 사람이 공영방송은 돈이 부족하고, 민영방송은 돈이 풍족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그 판단에는 어느 조직이 더 방만한지, 어느 조직이 더 혁신적인지가 포함돼야 한다.

더구나 방송업계에서 SBS는 3등 기업이다. 정해진 룰을 지키되 기존의 판을 흔드는 시도를 하지 않고서도 3등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영역은 이제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아마도 SBS는 좀 욕을 먹더라도 이번 기회에 KBS와 MBC에 고정된 수많은 스포츠 시청자의 눈을 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거대 공영방송들과 경쟁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보려 했을 것이다.

SBS가 과다한 중계료 지불로 국부를 유출시켰다거나 KBS나 MBC의 스포츠 중계에 비해 질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있다. 꼼꼼히 살펴봐야 할 문제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 역시 기본적으론 SBS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SBS를 보고 난 시청자들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실력으로 욕심을 부렸느냐”고 판단한다면 SBS의 단독 중계 모험은 패착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또한 싫든 좋든 경쟁이 만들어 내는 효과다.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