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나라 의총, 열린 마음으로 토론해 결론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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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나라당이 의원 총회에서 세종시 문제를 토론하기 시작한 것은 늦으나마 다행이다. 한나라당은 며칠이고 계속 논의하겠다고 하니 합리적 결과를 도출해낼 것으로 기대한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대화와 타협이다. 국가적 대사(大事)를 계파 간의 갈등으로 변질시키고, 이로 인해 민생을 외면하는 일이 더 이상 계속돼서는 곤란하다.

세종시 수정 논의는 지난해 9월 3일 정운찬 국무총리가 지명받은 직후 제기한 것이다. 그러니 벌써 반년이 다 돼 간다. 정부가 수정 대안을 발표한 지도 40일이 지났다. 그런데도 집권당이 당론을 정하기는커녕 토론 한 번 하지 못했다. 친이(親李·친이명박)나 친박(親朴·친박근혜) 모두 서로 말꼬리를 잡고, 공격만 해왔을 뿐 상대의 의견에는 귀를 막아왔다. 그러다 보니 오해만 켜켜이 쌓여 이제 같은 당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믿기 어려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비생산적이고 비민주적인 행태를, 그것도 국정을 책임진 집권 여당이 6개월 이상 계속하고 있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특정 정당이 내분을 일으키든, 그래서 망하든 그들이 선택할 문제지만 그로 인해 국정이 외면당하고 그 피해를 국민이 떠안아야 한다는 것은 곤란하다.

어제 의원총회 모습을 보면 그러한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기대에는 못 미친다. 시작부터 일부 의원의 시사잡지 인터뷰 내용을 둘러싸고 감정 싸움도 벌였다. 금도(襟度)가 사라진 계파갈등의 여파가 토론회 첫날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런 토론이 어쩌면 계파 간 불신을 더 깊게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토론 자체를 피하거나 생략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러한 감정적 발언으로 생긴 오해를 공개적으로 털어버리면 생산적 대화로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국정을 책임진 집권당으로서 성숙한 민주정당의 능력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당내 토론이 발전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선입견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토론에 임해야 한다. 이미 계파 간의 이견은 확인됐다. 그것을 다시 반복한다면 논의를 진전시키기 어렵다. 그동안의 정치적 공방에서 벗어나 좀 더 구체적으로 원안과 수정안이 끼칠 국가적 손익을 따져가야 한다. 새로운 대안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의원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다. 의원들이 계파의 입장에 묶여 있는 한 진지한 토론은 어렵다. 계파의 정략에 따라 방향을 정해놓고 소속 의원들이 앵무새처럼 발언하는 토론으로는 공감대는커녕 갈등만 조장할 뿐이다.

결국 의원총회를 마치면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만나야 한다. 아무리 계파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외쳐도 현실정치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벽을 깰 수 있는 건 역시 두 지도자다. 과거 정치사를 돌아봐도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심각한 갈등은 양측에 모두 치명적인 피해를 가져왔다. 두 사람의 정치력이라면 그동안 쌓인 오해를 풀고 상생(相生)하는 길을 찾지 못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