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의 현주소 점검한 '흩어지다' 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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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한국화의 위기론은 1970년대 이래 계속 제기돼왔지만 아직도 이 분야 작가들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화두다.

오는 17∼28일 서울 동숭동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열리는‘흩어지다’전은 한국화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진로를 모색하는 대형 기획전이다.

미술회관의 기획공모를 통해 선정된 김학량(37 ·전 동아갤러리 큐레이터)씨가 준비했다.

김씨는“당대의 지식인들이 몸소 회화를 실천하던 문인화의 맥락과 의미를 현대에 맞게 새로이 해석해보자는 기획”이라며“전통회화의 미학이 젊은 작가들의 작품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가를 살피고자 했다”고 밝혔다.

전시는 모두 5개 주제로 나뉘어 17명의 작가가 나름의 시각과 돌파구를 보여준다.

‘지필묵의 새로운 시각과 태도’에선 박병춘 ·박재철 ·김성희 ·양상용씨가 작품을 냈다.과거에 지필묵이 지식인의 문기나 교양을 표현하는 대표적 매체였다면 오늘날에는 또 하나의 매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각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품들이다.

이들은 주변의 사소한 삶과 사물,자신의 내면을 담담한 태도로 형상화했다.

‘문인적 테마에 대한 비평’에선 강홍구씨가 풍과 한시를 디지털 사진으로 결합했다. 배영환씨는 철판에 대중가요 가사를 볼트용접하거나 속물적 풍경화에 대중가요 가사를 결합했다.

김학량씨는 잡초나 잡목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거나 버려진 철사들을 화분에 난초처럼 심었다. 전통을 껍데기로 전락시키는 현대의 문화를 비판하는 작품들이다.

‘풍경을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문인적 시선’코너엔 김장섭 ·박영선 ·정동석(사진)김연용·장윤성(비디오) ·한희원(회화)씨가 참여했다. 박영선은 같은 풍경을 수십차례 반복 촬영함으로써 시선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한희원은 유화로 섬진강의 풍경을 그렸다가 다시 지우면서 문인화적인 여백을 형성한다.

‘재현적 잠입과 꿈꾸기’에선 황인기(그림) ·박용석(엽서) ·이성원(자연미술)신옥주(조각)씨가 새로운 자세를 보여준다.

이들은 무언가를 그리거나 만들면서 이를 소유하지 않고 그 순간 이를 놓아버리는 방식을 취한다.

예컨대 박용석은 노란 물탱크위에 초록색으로 드로잉을 한 뒤 이를 사진엽서로 만들어 대중에게 배포한다.

특이한 것은 17명 중에 수묵화 작가는 4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양길에 있는 한국화 작가들이 활로를 위해 그만큼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02-760-4601.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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