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거짓말 탐지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되면 심리적 흥분.긴장.갈등.불안상태에 빠지는 것이 보통이다.

탄로날 경우 예상되는 불이익이나 위험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이는 교감신경에 영향을 미쳐 갖가지 생리적 변화를 수반할 수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말을 더듬거나 눈을 깜빡이고 침을 삼키고 땀을 흘리며 눈길을 피하는 등 23가지의 언어.비언어적 변화를 거짓말 판정기준으로 분류한 학자도 있다.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에 관한 대배심 증언에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평균 1분에 26차례나 코를 만짐으로써 '피노키오 효과' 를 입증했다는 분석도 있다.

미 심리학자인 앨런 허시 박사는 "거짓말할 때는 코 안의 발기조직이 충혈돼 가려움을 느끼게 되므로 긁거나 문지르는 방식으로 만지게 된다" 고 주장한다.

피노키오의 이야기가 허황한 동화만은 아닌 모양이다.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생리적 변화 가운데 호흡과 심장박동수, 혈압의 변화를 측정해 거짓말 여부를 가리는 장치가 거짓말탐지기다.

오죽하면 이런 기계까지 등장했을까 싶지만 '폴리그래프' 라 불리는 거짓말탐지기의 역사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천문학자였던 갈릴레오 갈릴레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의 맥박을 기록하는 장비를 그가 고안해낸 이래 이를 거짓말 판별에 응용하려는 범죄학자들의 노력은 1920년대 거짓말탐지기의 발명으로 결실을 보았다.

자유심증주의가 원칙인 재판에서 거짓말탐지기의 증거효력은 판사가 결정할 문제지만 약 90%인 거짓말탐지기의 정확도는 법정에 제출되는 여타 증거보다 높다는 통계자료도 있다.

최근에는 '뇌 지문' (brain finger print) 판독장치까지 등장했다는 보도다(본지 1월 11일자 9면). 뇌파가 일으키는 전자반응을 측정해 감추고 싶은 기억의 흔적까지도 찾아내는 첨단기술이라고 한다.

새빨간 거짓말을 눈 하나 꿈쩍않고 해대는 특이체질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는 거짓말탐지기도 무용지물이라고 보면 나름대로 효과가 없진 않겠지만 왠지 섬뜩한 느낌도 든다.

"지난번에 시킨 일 어떻게 됐느냐" 는 상사의 질문에 "다 돼간다" 고 대답하고, 애인에게는 "세상에서 네가 제일 예뻐" , 또는 아내에게 "회사 일로 조금 늦을 거야" 라고 말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이 가장 자주 하는 거짓말이라고 한다.

거짓말은 진실의 윤활유라는 말도 있다.

본말이 뒤바뀌면 물론 안되겠지만….

배명복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