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오늘의 위기가 언론 탓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연두(年頭) 기자회견은 최근의 위기상황을 돌파하고 정치판을 안정시킬 정국 해법을 기대했던 많은 국민에게 만족스러운 답을 주지 못했다.

金대통령은 공생(共生)의 정치를 주장했으나 대부분의 책임을 야당에 전가하는 모습을 보였고 정도(正道)와 법치를 강조했지만 새로운 리더십도, 집권 정부의 폭넓은 관용도 보이지 못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시종 민주적 원칙과 법질서에 입각한 '강한 정부' 를 강조했다.

그가 인사정책의 획기적인 개선을 다짐한 것이 지금까지의 편중 인사를 시정하겠다는 뜻인지 앞으로 그 실현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또 대북 정책의 추진에서도 金대통령은 미국의 부시 새 행정부 및 일본 정부와도 긴밀히 협의할 방침임을 밝히면서 국민의 동의 없는 대북 지원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강조해 종래의 '퍼주기식' 대북 정책을 합리적인 방향으로 조정하겠다는 정책 수정 의사로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정작 본인이 강조한 정치 안정 문제에 대한 상황 인식은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강성(强性)일변도다.

특히 金대통령은 야당과의 공생적 협조 관계라는 원칙론을 인정하면서도 야당이 장외투쟁이나 벌이고, 의회에서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야당에 모든 책임을 넘기고 있다.

그렇다면 세풍(稅風).총풍(銃風)사태로 야당을 장외투쟁의 벼랑 끝으로 몬 것이 과연 누구였던가. 의원 꿔주기 사태에 대해서도 신한국당이 먼저 의원 빼가기를 했다고 떠넘기는데 1998년 집권하자마자 한나라당 등에서 의원 37명을 끌어간 것이 바로 국민회의와 자민련이지 않았던가.

남이 하면 불법이고 자신들이 하면 불가피하다는 식으로 강변하면 민주적 원칙과 법질서는 겉치레일 뿐 실은 모든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는 책임 전가요, 겉만 번지레한 허언(虛言)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걱정스러운 것은 金대통령의 언론관이다. 金대통령은 언론의 공정보도와 책임을 강조하면서 언론계.학계.시민단체.국회가 언론 개혁을 위한 대책을 세울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마치 오늘의 위기상황이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와 논평 탓이라는 함의(含意)가 엿보인다. 일부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언론 개혁이라는 것이 공정보도와 자유로운 비판 정신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좌파적인 소유 구조 개편을 주장하는 지극히 편협한 소수의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발언의 진의가 무엇인지 확실히 밝혀야 할 것이다.

만약 金대통령의 발언 속에 정부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고 자유로운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또다시 포퓰리즘적 수법을 동원하려는 의도가 감춰져 있다면 金대통령의 '강한 정부' 가 과거의 '강권(强權)정부' 와 어떻게 다른지 우리는 준절히 묻지 않을 수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