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리더십 보이지 않으면 세계는 쪼개져 갈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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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호 24면

“버블이 정점을 지나 붕괴하기 시작하면 자산을 처분한다.”
‘헤지 펀드의 귀재’인 조지 소로스(80) 소로스펀드운용 회장의 머니게임 요령이다. 그는 최근 홍콩대학(HKU)이 주최한 ‘조지 소로스와 대화’에서 빙긋이 웃으며 이 기법을 살짝 흘렸다. 그의 입에선 미·중 관계, 금융규제, 그리스 사태 등에 대한 생각과 전망 등도 흘러나왔다. 90여 분 동안 진행된 소로스와의 대화를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했다. 대화 동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검색할 수 있다.

조지 소로스가 본 중국, 그리고 세계

-이번 금융위기를 정의하면.
“신자유주의자들은 위기가 외부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금융시장 자체에서 발생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번 위기는 금융 시스템 내부에서 발생했다. 신자유주의 교리가 비현실적이라는 게 드러났다.”

-중국엔 어떤 영향을 미쳤나.
“중국 처지에서 보면 이번 위기는 외부에서 발생한 충격이다. 중국 내부의 문제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 아니었다. 충격이 적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수출 산업 등이 크게 피해를 봤다.”

-중국이 잘 대처하지 않았나.
“중국은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즉시 경기부양에 뛰어들 자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중국은 가장 빨리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번 위기 이후 중국의 역할은.
“베이징 지도자들은 중국이 글로벌 리더가 됐다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글로벌 리더가 됐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중국이 떠오르고 있고 미국은 가라앉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중국 주변에 모여들고 있다.”

-중국 리더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새로 형성되는 질서에서 중국은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할 듯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먼 미래를 보고 정책을 펴야 한다. 중국 지도자들은 오바마보다 더 먼 미래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많은 나라들이 중국 지도자들의 판단과 결정에 영향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열린 사회로 가려면.
“두 가지를 해야 한다. 중국 지도자들은 비판 과정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중국 지도자들끼리는 아주 활발하게 비판하고 토론하고 있다. 이는 현재 중국 힘의 원천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비판과 토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중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중국 지도자들은 열린 자세를 갖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각으로 대해야 한다. 글로벌 리더로서 적극적으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는 분열돼 갈등에 휘말리게 된다.”

-중국 상하이와 홍콩 등이 20년쯤 뒤에 세계 금융중심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답할 수 있는 사인이 아니다.”
소로스는 헝가리 태생이지만 몇십 년을 영국과 미국에서 활동했다. 그의 영어는 기대만큼 유창하지 않다. 중국어 억양이 짙게 배어 있는 질문자들의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질문의 내용이 무엇인가?”라고 되묻곤 했다. 그렇지만 이는 그의 투자 정보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장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간파하는가.
“버블은 비합리적이지 않다. 시장 참여자 각각은 아주 합리적으로 계산해 버블에 뛰어든다. 버블이 시작되고 있다는 점은 일찌감치 알 수 있다. 얼마나 이어질지 알 수 없을 뿐이다. 나는 거품이 시작되면 자산을 사들인다. 정점을 지나 붕괴하기 시작하면 자산을 처분한다. 과감하게 공매도하기도 한다.”

-버블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자산 가격이 급락한다.
“자산 가격이 추락하더라도 버블 초기에 사들인 사람은 이익을 보면서 팔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현재 거품이 일고 있다고 보고 사고파는 자산은 없는가.
“(웃으면서) 자산운용에서 은퇴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너무나 행복하다.”

-당신이 주가를 조작하고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있다.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정확하게 알면 그 흐름을 빠르게 만들 수는 있다. 정반대로 바꿔놓을 수는 없다. 92년 나는 경제와 시장 상황이 영국 파운드화에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예상해 그 방향에 베팅했다. 파운드화 가치 하락을 촉진했을 뿐이다. 카를 마르크스의 말처럼 역사의 흐름을 촉진할 수는 있어도 바꿔놓을 순 없다.”

-1992년과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당신을 비판하고 있다.
“마하티르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 내가 아시아 금융위기를 일으켰다고 공격했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내세우기는 참 쉽다.”

-글로벌 차원의 금융규제가 필요한가.
“우리는 지금 기존 시스템을 재가동시켜야 하는 게 아니다.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글로벌 공조가 아주 중요하다. 주요 20개국(G20) 회의가 효과적이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국제통화기금(IMF) 지분율 등 현실과 맞지 않는 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국가 위상 변화에 맞춰 IMF 지분율을 수정해야 한다.”

-어떤 시스템이 돼야 하나.
“시장은 불완전하지만 규제는 더 불완전하다. 규제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효율적인 감독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모든 나라의 금융 법규가 하나로 통일돼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효율성이 높은 규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대화의 마지막 주제는 유럽 부채 위기였다. 그는 전반적으로 그리스 사태가 잘 해결될 것으로 봤다.

-유럽 경제 상황은 어떤가.
“유럽 대륙은 아주 다양한 나라로 구성돼 있다. 스페인의 주택과 건설 업종이 금융시스템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 은행들의 부실 자산이 여전히 늘고 있다. 그리스 등은 공공 부채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그리스의 앞날은 어떨까.
“그리스가 재정적자 비율을 국내총생산(GDP)의 3%로 낮추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할 것으로 확신한다. 그 과정은 아주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리스가 요구 조건을 충족시켜 나가는 것을 보면서 유럽중앙은행(ECB)이 그리스 국채를 매입해주는 방식으로 긴급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 그리스 국민이 잘 이겨낼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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