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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보다 미래에 집중하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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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호 30면

기업 인수합병(M&A) 과정을 결혼이라 치면 실사(due diligence)는 일종의 맞선과 다름없다.

한찬희의 프리미엄 경영

배우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만나 관찰하는 게 맞선이듯이 실사는 인수하고 싶은 기업의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자체 역량에 대한 점검을 끝내고 M&A 전략을 수립한 기업은 본격적으로 인수 대상 기업 탐색에 나선다.

대상 기업의 과거 경영 실적과 현황, 미래 전망을 각종 분석을 통해 확인한 뒤 후보 기업군을 좁혀 들어간다. 최종적으로 한 회사를 내부적으로 점 찍은 뒤 해당 기업에 인수의향서(LOI)를 보내고 실사를 요청한다. 해당 기업에서 요청을 받아들이면 비로소 회사 내부로 들어가 실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를 통상 예비 실사라고 한다.

이를 테면 예비 실사는 인수하고자 하는 기업과의 첫 대면인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내심 매각을 희망하는 회사라도 이 단계에서는 모든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결혼에 목 마른 사람이라도 막상 처음 선보는 자리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예비 실사는 인수 대상 기업이 내놓는 한정된 자료를 통해 내부 사정을 짐작해 보는 수준에 그치기 마련이다. 본격적인 탐색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거나 혹은 인수의향서가 받아들여진 이후 다음 단계인 본실사에서 가능하다. 실사단이 해당 기업에 상주하면서 회사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대개 실사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사려는 회사 입장에서 제한된 시간 동안 원하는 만큼의 정확한 분석을 끝내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실사에는 보이지 않는 함정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바로 숫자에 대한 집착이다. 매출이나 이익 등 경영 실적에 직결된 수치에서부터 자산, 부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숫자들이 실사진의 눈을 사로잡는다. 각종 수치는 그간의 경영 활동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기업이 실사를 벌이면서 인수 희망 기업의 부채 등 특정 수치에 크게 매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숫자에 매몰되면 돌이키기 어려운 실책을 범하기 쉽다.

가장 대표적인 게 정성적 지표를 상대적으로 무시하는 데 따른 부작용이다. 매출액·부채 등 정량적 지표에만 매달리다 보니 임직원의 질과 자세, 근무 태도, 기업 문화에서부터 조직력과 기술력 등 무형 자산에 대한 평가는 뒤로 밀리게 된다. 물론 이런 체크 항목의 가치는 금액으로 나타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런 무형 자산이 M&A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인이 되고 있다. 갈수록 무형 자산이 기업 경쟁력의 주력 무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형 자산을 간과해 초대형 M&A가 실패한 경우도 있다. 미국 타임워너와 AOL의 합병 사례다. 미국 미디어 업계의 판도를 뒤바꿀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두 회사의 결합은 실사 과정에서 시장 환경 변화 등 정성적 요인에 대한 분석이 불충분해 ‘잘못된 만남’이 돼 버렸다. 그래서 요즘 실사는 재무 실사(FDD)에서 상업적 실사(CDD)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다.

숫자 이면에 담긴 허실을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재고 자산 수치를 보자. 단순히 재고가 많고 적음만 보고 경영 활동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근시안적인 접근이다. 그보다는 이런 결과를 유발한 원인과 시스템상의 문제를 찾고 해결 가능성을 찾는 게 보다 근본적인 접근법이 될 수 있다. 갈수록 M&A가 빈번해지면서 몇몇 기업은 구조조정, 연구개발 등 장기 성장 기반 마련을 위한 노력은 등한시한 채 단기 이익만 높여 시장에 매물로 내놓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른바 ‘윈도 드레싱(Window Dressing)’이다. M&A가 활성화된 미국에서는 인수 대상 기업이 인수합병 계약 체결 전에 운영자금이나 핵심 인력을 빼내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인수 기업 입장에서는 정확한 실사를 통해 이러한 의도를 밝혀 내는 것이 피해를 예방하는 길이다.

실사의 주체가 과연 누구인가를 명확히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아직도 인수 희망 기업 중 상당수는 실사를 투자자문사 등 외부 전문가의 힘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적지 않다. 이런 회사들은 대개 막상 자신들은 손을 놓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정확한 현실 파악을 가로막고 심지어 치명적인 오판을 부르기도 한다. 실사단에 인수 기업의 임직원을 참여시켜 현장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더불어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이를 활용하려는 태도도 중요하다.

M&A 실사는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 기업의 과거 성적에 연연하다 정작 미래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을 간과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현실을 직시하되 가능성의 씨앗을 찾아내는 것, 성공적인 실사의 조건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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