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CEO의 한식 만들기] 에이미 잭슨 AMCHAM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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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잭슨 대표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의 주방에서 김치찌개를 만들고 있다. 그는 매운맛 때문에 김치찌개를 즐겨 먹는다고 했다. [정치호 기자]

중앙일보와 중앙데일리(JoongAng Daily)가 한식세계화 노력의 일환으로 ‘외국인 CEO의 한식 만들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서울에 주재하는 외국인 최고경영자들이 평소 즐기는 한식을 손수 만들어보면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어떤 개선과 혁신이 필요한지 짚어봅니다. 첫 주자로 에이미 잭슨(46) 주한 미국상공회의소(AMCHAM) 대표가 나섰습니다. 그는 최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 주방을 찾아 김치찌개 만들기에 도전했습니다.

“아이 러브 스파이시 푸드(I love spicy food: 나는 매운 맛이 강한 음식이 좋아요). 입맛을 돋우는 데는 김치찌개 만한 음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겨울이 되면 얼큰한 김치찌개 생각이 많이 납니다. 뱃속이 따뜻하고 든든해지거든요”

에이미 잭슨 대표는 주한 외국인 사회에서 대표적인 김치찌개 애호가로 꼽힌다. "매운 김치는 독감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들었어요.”

그가 김치찌개를 처음 맛본 것은 1990년대 초반 워싱턴DC에서 존스 홉킨스대 국제대학원에 다닐 때다. 우연히 한식당 우래옥에서 먹어본 뒤 강렬한 맛에 매료됐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당시 미국엔 한식당이 흔치 않았어요. 김치찌개 생각이 날 때가 많았지만 주변에 쉽게 찾아갈 만한 식당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가 앞치마를 두르고 두부, 마늘 등을 능숙하게 썰고 다지는 모습은 여느 한국인 주부와 다름없어 보였다. 그의 도전을 옆에서 도와주던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이병우 주방장은 “외국인 손님에게는 너무 맵지 않도록 김치 양념을 물에 헹군 뒤 찌개를 만들어주곤 하는데 잭슨 대표는 한국 식대로 김치를 척척 썰어 그냥 넣으니 놀랍다”라고 말했다.

“김치의 종류는 몇 가지나 되나?” “깍두기도 김치 중 하나인가?” 잭슨 대표가 연방 질문을 하자 이 주방장은 “김치는 지역마다 다르고 그 종류도 셀 수 없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전날 준비해둔 채소 육수에 볶은 삼겹살과 김치를 넣은 뒤 찌개가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얘기를 나눴다.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의 모임인 주한 미 상의는 한미 FTA를 지지한다. 미 무역대표부 (USTR)에서 부차관보로 일했으며, 태미 오버비 후임으로 지난해 여름 한국에 부임한 잭슨 대표는 FTA 비준을 위해 바쁘게 뛰고 있다.

“양국 관계를 돈독하게 해줄 한미 FTA는 반드시 비준될 겁니다. 김치찌개 하나를 만들어도 먹는 사람의 입맛을 세심하게 배려해야 하는 것처럼 양국이 상대방의 고민을 배려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올 겁니다. 하지만 오래 끓일수록 좋은 김치찌개와 달리 FTA 비준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죠. 양국에 더 많은 시간을 준다 하더라도 현재보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는 없다고 봐요.”

잭슨 대표는 “전통 한식요리에는 국수나 쇠고기처럼 양식에 흔히 들어가는 재료를 많이 쓰기 때문에 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맛이 강한 한국의 고유양념이 한식이 세계 무대로 진출하는 데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나처럼 매운 맛을 좋아하는 외국인도 있겠지만 갖은 양념으로 음식 맛이 너무 강해지면 그 맛에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등을 돌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식 고유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도 외국인의 보편적 기호를 고려한 글로벌형 조리법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마침내 김치찌개가 완성됐다. 잭슨 대표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 후후 불면서 맛보고는 “바로 이 맛”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순식간에 공깃밥 한 그릇을 비운 그는 “조만간 우리집 부엌에서 나 혼자 힘으로 김치찌개를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글=이은주 중앙데일리 기자
사진=정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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