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통 모델 사형수 죽음 문턱의 열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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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파격적인 광고로 유명한 이탈리아 의류업체 베네통사가 최근 '사형수와 사랑에 빠진 한 여인' 때문에 곤혹스런 지경에 처했다.

베네통은 그동안 에이즈 환자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보스니아 내전에서 숨진 병사의 피묻은 군복, 수녀와 사제복을 입은 남녀의 키스 등 자극적 광고로 톡톡히 재미를 보아왔다.

1999년엔 약 2천만달러(약 2백25억원)를 들여 미국의 사형수 26명과 인터뷰한 뒤 그중 6명을 광고모델로 선정해 전세계에 광고를 내보냈다.

'우리는 사형수다' 라는 제목 아래 사형수의 사진과 '사형선고' 라는 문구가 적힌 이 광고 역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독일의 다크마르 폴친(32)이라는 여성이 그만 광고 속의 사형수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미국 AP통신과 영국 옵서버지는 최근 이 광고로 인해 싹튼 비극적 사랑의 전말을 보도했다.

그녀는 99년 말 함부르크 시내의 버스정류장 앞에서 길 건너편 광고판에 나온 남자모델의 얼굴을 보고 시선을 떼지 못했다. 광고속 남자인 사형수 바비 리 해리스(34.사진)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 것이다.

그녀는 지난해 초 베네통 본사 등을 수소문해 광고속 주인공 해리스가 미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 중앙교도소에 수감돼 있다는 걸 알아냈다.

그는 91년 온슬로 카운티의 어부를 살해한 뒤 시체를 강물에 버린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1급 살인범이었다.

그런 걸 운명이라고 하는 걸까. 그녀는 가족들이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지난해 9월 감옥으로 찾아가 해리스를 만났다. 10월에는 아예 교도소 근처로 이사했다.

그후 일주일에 한번씩 해리스를 면회했다. 지금까지 손 한번 잡아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교도소 당국에 결혼허가 신청을 해놓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해리스에 대한 사형 집행이 오는 19일로 잡혔기 때문이다.

폴친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구명운동에 매달리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새로 당선한 마이크 어슬리 주지사의 자비를 구하는 것밖에 없다.

사면이나 사형연기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폴친은 사형집행 직전에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와 직접 대면하게 된다.

그녀는 "면회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맞잡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을 느꼈다. 우리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으며 죽음도 우리의 사랑을 갈라놓지는 못할 것" 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광고가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 라는 비난도 적지않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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