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이창호 18연승 진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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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018배 패왕전에서 잘 짜여진 각본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본래 토너먼트였던 패왕전은 지난해부터 연승전 스타일로 포맷을 바꿨다.

설명하면 이렇다.

①본선멤버 20명을 뽑아 1번부터 20번까지 일렬로 늘어선다.

②1, 2번이 먼저 대결하고 승자는 계속 그 다음 번호와 맞붙는다.

③2연승하면 결선 토너먼트 진출권을 확보한다. 단 승자는 2연승 후라도 질 때까지 계속 둘 수 있다.

④전년도 우승자인 조훈현9단은 시드를 받아 맨 끝번인 20번을 차지해 1승만 해도 결선에 갈 수 있다.

추첨에서 이창호9단(사진)이 2번을 뽑아 첫 대국에 나섰고 이 첫판부터 이9단이 연속 이겨 전무후무의 진기록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창호9단은 이성재5단부터 서봉수9단까지 가볍게 4연승. 제 아무리 강한 이9단이라도 연간 승률은 80% 정도니까 어디선가 걸릴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조한승4단과 이세돌3단을 연파하고 10연승을 올리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다른 사람 아닌 '이창호' 니까 잘하면 결선 토너먼트 없이 곧장 우승하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9단은 18연승을 거뒀고 이제 조훈현9단 한 사람만 남겨두게 됐다. 그 대국은 오는 12일 한국기원에서 열린다.

패왕전은 본선대국료가 국당 80만원이고 우승상금이 1천2백만원인 중소기전. 그러나 이9단이 막판에 조9단을 꺾고 우승할 경우 이9단은 대국료와 상금, 그리고 연승상금 1천5백만원을 합쳐 4천2백20만원을 벌게 된다.

남들에겐 80만원씩만 나눠주고 모든 상금을 혼자 독식하는 것이다. 요즘 시세로 볼 때 19연승의 대가치고는 큰 건 아니다.

또 연승기록이란 것도 이런 기전이 패왕전 하나뿐이니까 기록의 의미는 별로 없다. 이9단은 그러나 이 한판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해 이세돌3단에게 MVP를 놓친 이9단은 올해 잉창치(應昌期)배 결승전, LG배 준결승전 등 큰 승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조훈현9단과의 패왕전은 그 전초전이다. 여기서 승리하여 흐름을 탄 다음 기성전에서 도전자 유창혁9단을 물리치고 應씨배와 LG배를 석권하는 것이 이창호9단의 올 전반기 시나리오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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