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현장감 살린 '기초…' 시리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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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중앙일보에 새해 특집이 여러 개 실렸지만 그 중에서도 '기초를 다지자' 시리즈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위기상황에 비추어 참 바람직했다.

시작하면서 밝힌 "원론적 비판은 지양하고 '현장감' 을 최대한 살리겠다" 는 방침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흔히 말하듯 우리나라 사람들은 총론에 강하고 각론에 약하다. 그래서 현장감이 중요하다.

그 뒤에 연재된 "주식회사가 뭔지 모른다" (1월 1일),

"정부-기업-단체 정보공유 마인드 갖자" (1월 3일),

"경부고속철 독일 감리사의 '원칙주의' -외국인이 본 우리 공사" (1월 4일),

"적당히 묶은 화물적재함 고속도 살인 흉기" (1월 5일),

"부실한 기초의학 통계" (1월 6일), "업소 탈세 부추기는 과세 시스템" (1월 7일) 등은 '좋은 내용과 함께 '앞서의 방침을 잘 지키고 있다.

그러나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매번 듣는 얘기를 반복해 듣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사회가 무엇이 잘못돼 있는가는 이미 충분히 분석돼 있다고 생각한다. 알고 있는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할 정부는 오히려 부정부패를 비난하는 여론을 "마녀 사냥" 으로 인식하는 등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대표적 언론사인 중앙일보가 사회의 부정과 부조리를 척결하는 역할의 한 축을 적극적으로 담당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정부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부정부패방지법을 제정하게 하는 등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구조적 변화에 대해 시민단체와 연계, 지속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한 방안이 될 수 있겠다.

또한 예를 들어 '업소 탈세' 에 대해서도 매번 비슷한 기사를 보도하는 것보다 특정한 구역을 선정해 자세한 탐사 보도를 하고 그 결과를 끈질기게 추적해 그 지역에서 변화를 이끌어 내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이론적 비판보다 한 지역의 실증적인 변화가 전국적인 제도와 인식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본다. 언론에서 특정 사안에 대해 계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보도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한 번 보도하고 잊어버리는 일과성은 언론의 근본적인 결점으로 언론학계에서도 지적하고 있다. 지도력 부재로 인해 우리 사회가 와해될지도 모를 위기 상황에서 정말로 중앙일보의 비상한 노력을 기대한다.

중앙일보를 비롯한 언론 전반에 평소 지니고 있는 불만이 있다. 우리 글에 대한 배려와 노력이 부족한 점이다. 신문 편집과 조판이 전자화하면서 이런 경향이 더 심해지지 않나 싶다.

우연히 눈에 띈 "그래도 다시 파이팅!" (1월 1일) 기사 제목에 쓰인 '파이팅' 은 잘못 쓰인 영어의 대표적 사례다.

번역문학가인 안정효씨가 그의 저서 '가짜 영어 사전' 에서 무려 15쪽에 걸쳐 그 말의 폐해를 설명하고 있다(그 책은 가까이 두고 짬짬이 읽으면 아주 재미있다).

파이팅은 열심히 하자는 뜻이 아닌 싸우자는 의미라는 것이다.

특히 외국과의 운동경기에서 한국 선수나 관중이 그 말을 외치는 경우에 지나치게 투쟁적인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잘못된 영어는 기존의 것들 외에도 계속 추가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위기 이후에 경제계에서 자주 쓰이는 빅딜과 벤처라는 말도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와 영어권에서 쓰는 원래의 의미가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우리의 언어가 언론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 만큼 책임의식을 갖고 올바른 말을 사용해주면 좋겠다.

류춘열 <국민대 교수.언론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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