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모험을 건 쿵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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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16강전
[제7보 (124~145)]
黑.송태곤 7단 白.쿵제 7단

자존심과 만족감. 이 둘 사이는 묘한 상관관계가 있다. 승부란 끝나면 승자와 패자만 남는다. 과정은 잊힌다. 그런데도 많은 강자들은 기왕 이길 바엔 자존심을 지키며 이기고 싶어한다. 그래야 만족감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승부사들은 종종 패배의 위험조차 무릅쓴다. 승부가 뒤바뀌기도 한다. 훗날 지내놓고 보면 허망하고도 미친 짓 같아 다음부터는 오직 승리에만 몰두하리라 다짐하지만 판 앞에 앉으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전보 흑▲ 두 점이 놓이면서 흑집이 이상적으로 커졌다. 124로 수비하면서 쿵제는 당했다고 느낀다. 깨끗하게 리드하는 흐름이었는데 잠깐 방심하다가 집을 도둑맞았다고 느낀다. 형세를 살펴보니 그래도 국면은 여전히 좋다. 쿵제는 128~134까지 흑대마의 측면을 위협하며 빠르게 판을 결정지어가기 시작했다.

이때 송태곤 7단의 135가 등장했다. 가시가 돋친 수. 찔리는 게 두렵다면 '참고도'처럼 물러서면 된다. 상당한 손실이지만 그래도 바둑은 백이 이긴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한다. 직감적으로 수가 되지 않는 형태인데 수가 날까 두려워 물러선다는 것은 비겁한 느낌이 든다.

136으로 살렸다. 이 한 점이 살아 있어야 A의 공격이 가능하며 128부터 134까지의 공격수들도 체면이 선다. 그러나 승리를 앞에 둔 백이 스스로 위험을 자초한 것도 분명하다. 쿵제는 만족한 승리를 위해 도박을 걸고 있다. 송태곤은 중앙에서 약간의 공작을 마친 뒤 143으로 쑥 빠져나갔다. 불리한 흑엔 밑져야 본전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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