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질렀는데 활활 안 탔다고 무죄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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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빨치산 추모제에 학생들을 데리고 참석한 전 전교조 교사 김형근(50)씨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과 관련해 검찰이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대검 공안부는 18일 항소 방침을 밝히면서 “전주지법 진현민 판사의 자의적인 법 해석이 도를 넘었다”며 “이는 대법원 판례와도 배치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판결문에 나타난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지는 항소이유서를 작성 중이다.

검찰은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성이 없다”는 이유로 빨치산 추모제 참가를 무죄로 본 진 판사의 판단에 대해 “남의 집에 불을 질렀는데 활활 타지 않았다고 무죄를 선고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추모제에 적극적으로 참가한 행위는 당연히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남녘 통일열사(빨치산)의 뜻을 계승해 미군을 몰아내자”는 이적성 구호가 난무한 추모제(2005년 5월)에 어린 학생들을 데리고 가고, 학생들에게 빨치산 출신 장기수들을 ‘훌륭한 분’이라고 표현한 편지를 읽도록 한 행위는 북한을 찬양한 것이라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대검 관계자는 “빨치산 장기수를 민족의 영웅으로, 남한 측은 친미 사대주의 무리로 표현하는 행사에 판단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데려간 것은 사회적으로 해악이 큰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법원에선 2006년 빨치산 추모제에 다녀와 그 내용을 기행문 형식의 글로 써 유포한 사람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사례가 있다. 인천지법에서 1·2심 모두 유죄로 인정했고,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검찰은 북한이 만든 책자와 같은 내용이 담긴 이적 표현물을 소지·배포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내린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진 판사는 김씨가 소지한 이적 표현물은 개인 용도일 뿐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한 목적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김 교사가 북한 원전의 내용을 학생들이 자주 드나드는 인터넷 카페에 띄워 놓았는데 어떻게 선동 목적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 판례와도 충돌한다. 2004년 대법원은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북한 원전의 내용을 인터넷에 유포한 혐의(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등으로 기소된 서울 모대학 학생회 간부 김모씨에게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이적 표현물을 소지·유포한 경우 이적 목적은 적극적 의욕이나 확정적 인식까지는 필요 없고 (그럴지도 모른다는) 미필적 인식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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