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유산 영어 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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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방학 동안 서대문형무소 역사관과 경복궁을 찾으면 영어해설 가이드를 받을 수 있다. ‘한국고유의 정서나 문화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똑똑한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보충설명을 제대로 해주기 때문이다.

미국유학생들과 어린이 도슨트

“One of the most famous resistance demonstrations was the March 1st Movement. Thirty-three leaders declared Korea’s independence at Pagoda Park in 1919. (3·1운동은 가장 큰 독립운동이었어요. 1919년 33명의 민족지도자들이 파고다 공원에 모여 독립선언을 했답니다).”

12일 오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미국에서 온 조안나 밀스(Joanna Mills·19)·로라 피겨로아(Laura Figueroa·19)양은 서대문형무소 영어해설 가이드를 진행하고 있었다. 특히 애국지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고문기구인 벽관을 설명할 때는 벽관 안에서 꼼짝달싹 못한 채 힘들어하는 표정을 익살스럽게 지어 보여 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영어도슨트 배영제(장곡초6)군이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Be quiet”라고 말했다. 배군은 “서대문형무소는 애국선열들의 넋을 기리는 곳”이라며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들을 생각하며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주의를 줬다.

밀스와 피겨로아 양은 미국무성에서 장학생으로 선발돼 지난 여름 한국으로 유학을 왔다. 한국어가 세계 주요 7대 언어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면서 미 정부에서는 자국학생들을 한국으로 파견해 문화와 언어 등을 배우도록 배려하고 있다. 밀스 양은 방학 동안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지난 한 달 동안 국제교류문화진흥원에서 한국문화와 역사를 배웠다. 그는 “일본의 식민통치에도 굴하지 않고 훌륭한 발전을 이루어낸 한국을 다시 보게 됐다”고 말했다. 피겨로아 양은 “영어는 물론 자국의 역사까지 술술 말하는 한국학생들에게 자극을 많이 받았다”며 웃었다.

현장체험학습 원하는 학부모들

영어해설가이드를 신청한 학생들은 우리 문화와 역사를 표현하는 영어단어에 귀를 기울이고, 영어로 질문도 했다. 박성민(서울 가락초5)군은 필기구를 꺼내 새로 알게 된 단어들을 꼼꼼하게 정리했다. 박군은 “고문·민족·독립운동 등 생소했던 역사관련 단어들을 영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호동(가락초5)군은 영어도슨트 김지원(서울 불암초6)양에게 영어 잘하는 비결을 알려달라고 청했다. 김양은 “주말을 이용해 외국인이 자주 찾는 관광명소에 가 외국인들에게 영어로 먼저 말을 걸어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쑥스럽지만 몇 번 하다보면 자신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평소에 영어동화책 등을 읽으며 영어공부를 꾸준히 하는 것도 잊지 말라”고 덧붙였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박경목 관장은 “지난해부터 국제교류문화진흥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어린이 도슨트들을 대상으로 역사교육은 물론 해설연습까지 준비했다”며 “영어 현장체험학습을 원하는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온 김귀자(41·가락동)씨는 “외국인의 시각으로 굴곡의 우리 역사를 듣는 것은 색다른 느낌이었다”며 “역사공부는 물론 글로벌 마인드까지 키울 수 있는 유익한 프로그램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밀스와 피겨로아 양은 방학이 끝나는 2월 말까지 매주 월·수요일 오후 2시에는 경복궁, 금요일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영어해설을 계속한다. 영어로 간단한 의사소통이 되는 어린이는 누구나 무료로 참가할 수 있다. 영어도슨트 활동을 원하는 학생은 일정기간의 수업을 수료하면 된다.

[사진설명]미국에서 온 로라 피겨로아(왼쪽)·조안나 밀스(오른쪽)양은 영어도슨트 김지원양과 배영제군과 함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영어 해설 가이드를 진행하고 있다.

▶문의= 02-3210-3265

< 송보명 기자 sweetycarol@joongang.co.kr / 사진=김진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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