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빵은 1진 선·후배 대물림 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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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일부 중학교 졸업식장에서 벌어진 ‘알몸 뒤풀이’(졸업빵)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은 17일 “우리 사회의 중병”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다. 이 대통령은 “단순히 경찰의 사건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 졸업생과 학교가 근본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일을 계기로 졸업식과 입학식 문화가 정상화되도록 힘써 달라”고 지시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날 서울 삼청동 교원소청심사위원회 대회의실로 전국의 시·도 교육청 생활지도 담당 장학관들을 긴급 소집했다. 교과부는 우선 전국의 중·고교를 대상으로 졸업식 뒤풀이 실태를 조사하기로 했다. 조사 과정에서 폭력적인 사례가 파악되면 해당 학교와 학생 등을 엄벌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을지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황준원 교수는 “일시적인 해방감을 맛보기 위한 일탈 행위라도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범위를 벗어날 땐 아이들에게 ‘분명한 잘못’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폭력의 확대 재생산=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4~5건의 알몸 뒤풀이 외에도 폭력적인 뒤풀이가 곳곳에서 벌어졌었다. 본지 취재 결과 경찰이 수사 중인 경기도 고양시 A중학교의 인근 B중학교에서도 지난 11일 알몸 뒤풀이가 있었다. 지난해 2월 B중학교를 졸업한 김모(17·고교 중퇴)군은 본지 기자에게 “지난해엔 졸업빵의 피해자였고 올해엔 가해자였다”고 말했다. 김군은 올해 모교를 찾아가 후배들에게 졸업빵을 ‘선물’했다고 했다. 김군은 B중학교의 ‘1진’이었다. 1진은 각 학년에서 싸움을 가장 잘하는 학생 또는 그 무리를 일컫는 중·고교의 은어다. 그는 “졸업빵은 1진 선배들이 1진 후배에게 해주는 것이 관례”라고 했다. 이어 “이런 방식의 졸업빵은 최소 4년 전부터 대물림돼 왔다”고 덧붙였다. 또 “졸업을 앞둔 1진들은 옷을 벗는 등의 졸업빵을 예상하고 있으며 선배들로부터 미리 연락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도 했다.

김군은 B학교 졸업식 일주일 전부터 졸업 예정인 1진 학생 3명에게 구체적인 졸업빵 장소와 시간을 통보했다고 한다. 졸업식 이틀 전엔 김치액젓·까나리액젓·밀가루·물엿·식초 등의 재료를 미리 샀다. 졸업식 당일 오후 2시30분쯤, 김군을 포함한 선배 6명은 학교 인근의 공원에서 호출 당한 1진 후배 3명을 만났다. 졸업빵 ‘도우미’ 역할을 하는 2진 졸업생 수명도 함께 현장에 왔다. 김군 등은 후배 3명의 옷을 모두 벗긴 후 준비한 재료를 던졌고, 재료가 바닥난 이후엔 후배들을 알몸 상태로 일렬로 세워 30분 정도 시내를 걷게 했다.

김군의 말대로라면 도를 넘은 졸업빵은 일부 문제 학생들의 문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폭력 문화가 주변 학생들에게 순식간에 전파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폭력 행위가 선배에서 후배로, 1진에서 2진으로 퍼지고 그런 문화가 전체 학생들을 괴롭히게 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5일 서울 금천구에서 한 여중 졸업생이 선배와 동료 수십 명에게 교복을 찢기고 케첩을 맞은 사건에서 또 다른 피해자 2명이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은 경찰에서 “가해자들과 평소 알고 지냈는데 현장에서 우연히 마주쳤다가 함께 졸업빵을 당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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