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제살리기에 다시 힘 모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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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암울했던 한 해가 저문다. 한국 경제에 있어 2000년은 기억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한 해였다.

환란(換亂)의 터널을 빠져나오는가 하는 희망은 산산히 부서졌고, '대박' 의 꿈은 쪽박으로 변했다.

기업은 활기를 잃고, 근로자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국민은 불안에 떨고 있다.

"연내 기업.금융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겠다" 던 공언이 다시 물건너갔음은 정부 스스로 인정한다. 신뢰는 무너지고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대외 여건마저 나빠 내년 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자칫 바닥 모를 최악의 상태로 추락할지 모른다는 어두운 전망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고통스러운 결과에 대한 1차적 책임은 정부의 무비전과 무소신.무대책에 있다.

때 이르게 "위기는 지났다" 며 샴페인을 터뜨리는 오판을 저질렀고, 4대 부문 개혁을 외치면서 밑그림이나 구체적인 프로그램도 준비하지 않았다.

일관성이나 객관적인 기준도 없었고 원칙도 지키지 않았다. 시한에 쫓겨 허둥대면서 임기응변과 말바꾸기를 거듭했다.

'공적자금 추가 조성은 없다' 던 약속은 40조원 추가 조성으로 바뀌었고 '11.3 기업 퇴출' 과 현대건설 처리 과정에서 보인 무원칙은 정부의 개혁 의지를 의심케 했다.

공기업과 은행의 파업에 대한 대응은 무대책에 가까웠다. 그 결과가 금융시장 혼란과 불신, 그리고 제2의 경제위기설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정치권의 분별 없는 '내몫 챙기기' 와 포퓰리즘, 그리고 노동계 일부의 파업 선동은 사태를 악화시켰다.

이대로는 안된다. 한국 경제가 다시 설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그 해답은 국민.노동자와 정부.정치권의 단합된 힘뿐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다.

싸늘한 냉소만 팽배한 현 상황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정책도 무용지물이 될 뿐이다.

정부는 원칙에 충실하고 일관성 있게 기업.금융 개혁을 추진해 신뢰를 회복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국민도 냉소와 불신은 결국 스스로의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인식, 다시 한번 '금 모으는' 심정으로 돌아가 협조하기를 당부한다.

어려운 속에서도 그나마 조금씩 희망스러운 조짐은 보인다. 금융 파업은 사실상 끝났고 우려했던 동투(冬鬪)도 근로자들의 양보와 정부의 노력으로 고비를 넘겼다.

양측은 이번 일을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 그리고 미흡한 노동분야 개혁으로 이어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기업.금융.노동 구조조정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공공부문 개혁을 한층 강도 높게 진행해야 한다.

때마침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가 '경제위기 타개를 위한 초당적 협력' 을 들고나왔다.

여야가 정쟁(政爭)을 접고 경제 살리기에 한마음을 모으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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