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 일본, 물가 또 내려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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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도쿄=남윤호 특파원]최근 일본에서 물가가 하락하면서 디플레를 알리는 불길한 조짐인지, 아니면 생산성 향상과 유통구조 혁신에 따른 반가운 현상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 같으면 물가 하락은 일단 환영의 대상이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워낙 오랫동안 불황에 시달리다보니 물가 하락에 따른 디플레보다 차라리 지금의 고물가가 낫다는 심리 상태가 없지 않다.

27일 일본의 경제기획청.총무청.일본은행에 따르면 올해 도쿄(東京)중심부 23구(區)의 소비자 물가지수가 전년에 비해 0.7% 떨어졌다.

일본에서 연중 물가가 하락한 것은 현재 방식의 물가조사가 시작된 1971년 이후 95년(0.1%).99년(0.5%)에 이어 세번째다. 하락 폭으로는 역대 최대치다.

일본 언론은 물가가 떨어져도 소비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는 물가 하락이 경기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반복적인 디플레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 기업들이 수익을 희생하면서까지 가격경쟁에 나서고 있으며, 이것이 부도와 실업률을 높여 경기를 더욱 얼어붙게 한다는 논지다.

이에 대해 일본은행은 최근의 물가하락은 유통 혁명과 생산성 향상에 의해 일어난 것이므로 '좋은 물가 하락'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PC.휴대전화.디지털 카메라 등 정보기술(IT)관련 제품은 신기술 개발로 1년에도 몇차례나 가격 인하가 이뤄지고 있으므로 디플레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또 중국산 저가제품으로 일본 국내 의류시장을 장악한 의류업체 '유니클로' 처럼 유통 혁신으로 가격 인하를 유도하는 기업이 잇따르고 있는 것도 전반적인 물가 하락에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기획청은 인터넷 쇼핑몰의 비중이 지금은 가계 지출의 0.1%에 불과하지만 2004년에는 2%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돼 앞으로 물가 하락의 촉매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행 도쿄사무소 안세일(安世一)부소장은 "일본경기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물가 하락이 디플레의 악순환을 빚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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