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주부는 한가롭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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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여러 가지로 우울한 소식이 많이 들리는 세밑이다.

무엇보다 경제가 우리에게 미치는 직.간접적 영향 때문이리라. 세밑이라고 꼭 즐겁고 유쾌한 기사만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날씨마저 추우니 신문 펴보기가 어떤 때는 겁이 난다.

꼭 내 주변이 아니더라도 가장들이 직장을 잃는다는 소식 때문에 이 겨울이 더욱 을씨년스럽다.

남편이 대기업에 다니는 한 친구는 겨울방학 동안 파출부 일이라도 해야 할까보다라며 한숨을 쉰다.

월급은 오르지 않고 장사는 되지 않아도 아이들의 사교육비는 방학을 하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나 역시 어려운 생활을 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사교육비에 대해 부담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고 있으니 일반 가정이야 오죽할까. 하지만 방학 동안 텅텅 비어 있는 학교는 사교육에 대해서는 여전히 눈을 딱 감고 있다.

*** 취업의 절박함 이해 부족

그러던 중 취업 주부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는 작은 기사였지만 눈길을 끌었다(12월 22일자 31면). 취업 주부 10명 중 8명은 생활비를 벌려고 직업을 얻었으며, 그 중 가장 많은 동기가 아이들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서라는 내용이었다.

아이들의 교육을 생각해 집에 있어야 한다는 보통의 여론과는 달리 엄마들이 아이들 교육을 위해 집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이 통계에 의하면 자아실현을 위해 취업한 주부는 열명에 한 명 꼴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평범한 기사 같았지만 잠시 어리둥절했다. 왜 내가 이런 기분이 들까 잠시 생각해 보니, '웬 자아실현□' 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남자들에게 자아실현을 위해 직장에 나가느냐는 질문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하니 더욱 그랬다. 더구나 지금이 어떤 때인데 자아실현을 위해 직업을 갖느냐는 질문을 했을까 싶었던 것이다.

주부는 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우다 자아실현을 위해 직업을 가질 수도 있는 한가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면 자아실현을 위해 취업한 주부는 열명 중 한명이라는 글귀를 강조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중앙일보가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안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더구나 한 가정에서 차지하는 사교육비 문제는 신문이 일년 내내 문제를 지적하고 그것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도 지나치지 않은 문제이리라.

*** '정동진의 퇴색' 대책 아쉬워

또 하나 눈길을 끈 기사는 "한국 인권 그리스와 비슷…북한 최하위" 라는 기사였다(12월 22일자 12면). 자세히 살펴보니 세계 1백92개 국 중 북한의 민주화 상황이 최하위라는 대목이 맨 앞에 나와 있었다.

솔직히 북한이 세계 최하위 인권 국가가 아니라 거의 지옥과 같은 국가라고 한들, 우리의 인권과 민주화 상황에 대해 다행이다, 저쪽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나 좋다, 그러니 참아야지라며 안도할 만한 세대는 많지 않다고 본다. 북한은 북한이고 우리는 우리인 것이다.

나는 한국이 그러면 세계에서 몇 째쯤 가는 인권국일까 궁금했지만 그것은 기사에 나와 있지 않았다.

그리스.칠레.이스라엘.루마니아와 비슷한 상황이라는 수박 겉핥기 식의 내용만 있을 뿐이었다.

전문가가 아니어서 자세히 조사해 보지 않았지만 그리스.칠레.루마니아는 오랜 독재의 후유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라가 아닌가.

더구나 이스라엘은 거의 전시상황이니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얼마나 보장되는 나라일까 하는 생각에 새삼 한심했다.

당당하게 우리가 지금 1백92개국 중 어떤 상황에 있다는 것을 밝혀주는 게 신문이 용감하게 할 일이 아닐까. 아마도 우리나라의 국가보안법 같은 것이 세계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지는지도 독자들은 궁금해할 것이다.

이밖에 '정동진의 퇴색' (12월 19일자 23면)이라는 기사도 흥미있었다.

그러나 단순한 사실보다 그나마 우리가 겨울을 간직한 아름다운 바닷가의 한 역을 어떻게 그대로 보존할 수 있겠는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아 아쉬웠다.

사람이든 장소든 조금만 틈이 나면 무참히 짓밟아 초토화해 버리는 우리의 잘못된 습관도 함께 조명했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내내 아쉬웠다.

공지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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