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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민 소통 ‘금천예술공장’에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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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의 다산쯔(多山子)798 예술특구(2002년)와 일본 요코하마의 뱅크아트 1929(2003년), 그리고 프랑스 파리의 르 생카트르(2008년). 이들의 공통점은 각기 쇠퇴하는 군수공장·은행·시립장례식장을 문화 창작공간으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례는 이제 외국의 일만은 아니다. 서울에는 남산·서교·금천·신당·연희·문래 등 현재 6개의 창작촌이 형성돼 있다. 모두 서울시가 운영하는 문화예술 창작공간조성사업의 일환이다. 시내보다 아파트촌에, 교통이 편리하기보단 불편한 곳에 있는 창작공간에는 나름의 이유도 있다. 버려진 시설을 재활용하고 도시를 재생한다는 목적과 지역의 특징을 고려한 창작공간을 만들어 지역사회와 소통하기 위한 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다. 금천예술공장의 주민과 소통하는 예술 프로젝트 현장을 찾아봤다.


“우리 구에 이렇게 좋은 시설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네요.” “금천구민과 함께 하는 공간”“찾아오기 쉽게, 꼭 번창하세요.”

금천예술공장 내 게시판에 쓰여 있는 메시지들이다. 설치·영상·연극·시각디자인부터 주민과 소통하는 커뮤니티 아트가 활성화된 이곳을 찾은 주민들이 남겨놓은 글이다.

금천구 독산동 밀집된 아파트촌에 사이에 자리 잡은 금천예술공장은 옛 인쇄소였던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속칭 구로공단으로 불리던 이곳은 현재 디지털산업의 일번지로 이미지를 바꿔나가고 있다. 하지만 밤에도 공장기계가 돌아가는 준 공업지역이고 조선족이나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주거 밀집지역이기도 하다.

오후 7시30분이 되자 지하1층 워크룸숍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느린 시작’이라고 이름 붙은 이 프로젝트는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진행되는 요가·명상·미술치료를 이용한 치유 프로그램이다. 금천예술공장의 1기 입주 작가인 정은혜(38)씨는 이 시간을 진행하는 미술치료사이자 요가강사 겸 커뮤니티 아티스트다. “커뮤니티 아티스트란 보는 사람에 따라선 기획자, 교육자 혹은 예술가로 불려요. 쉽게 말하면 새로운 것 해보자고 일을 벌이고 다니는 사람들이죠.” 정씨는 금천예술공간이라는 지역적이고 동시에 예술적인 ‘공간’을 통해 지역주민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을 찾다 ‘느린 시작’을 기획했다.

느린 시작은 요가와 미술을 통해 참가자들이 서로 소통하며 에너지를 얻는다. 프로그램 내용은 간단하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몸이 덥혀질 만큼 요가를 한 후 명상으로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마지막으로 명상 중 느낀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어떻게 보면 운동하고 그림을 그린다는 단순한 행위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고 몸을 움직이고 그림을 그리는 게 물흐르듯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이뤄지고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것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민들의 반응이다. “평소엔 잘 하지 못했던 나를 돌아보거나 주변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요.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우리 지역 사람들이 많이 알았으면 좋겠어요.”금천구 독산동에 사는 김유선(44)씨의 말이다.

정씨는 이번 달로 금천예술공장 입주기간이 끝난다. 요즘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진행할 ‘미술, 아이티 돕다’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16일간 작가와 일반인이 아이티를 위해 벌이는 창작활동의 장이다. 작품을 함께 만들어 전시·판매해 수익금을 아이티 구호단체에 기부한다. “작가도 좋고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어요. 창작을 하고 싶었던 사람, 미대를 나왔지만 딱히 재능을 뽐낼 기회가 없던 사람, 혹은 동네 아이들까지 모두 환영이에요.” 느린 시작의 프로그램 참가비로 참가자들에게 1000원씩 받았던 씨앗기금도 ‘미술,아이티 돕다’의 수익금에 보태진다. 1000원씩 모은 씨앗기금을 1000만원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많은 사람들을 모아야 해 금천보다 서교예술실험센터를 골랐다는 정씨. “예술촌은 사람들이 모여서 작품을 만드는 곳이죠. 하지만 작가만의 예술이 아니라 삶 속에 녹아든 장소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모여서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진다면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지겠어요.” 정씨는 “그러기 위해 어떻게 하면 예술촌을 활성화할 수 있을지 작가들끼리의 교류와 소통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시창작공간은 올해 중으로 시민중심의 복합문화예술교육공간인 성북예술창작센터, 어린이 창의력 개발을 위한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 자연을 주제로 주민과 예술가들이 함께 꾸리는 공동창작공간 홍은예술창작센터를 추가로 개관할 예정이다.

[사진설명]금천예술공장 입주 작가인 커뮤니티 아티스트 정은혜(왼쪽)씨와 참가자들과 함께 ‘느린 시작’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上).지난 달 28일 개관식을 가진 문래예술공장을 찾은 사람들이 전시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 / 사진=황정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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