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주인되자] 12. 안전없는 '스쿨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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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학교 앞 도로가 아슬아슬하다.

가방을 멘 어린 학생들이 재잘거리며 몰려가는 도로엔 보도.차도의 구분도 과속방지턱도 없다.

21일 오전 8시 서울 도봉구 창림초등학교 앞. 보도가 따로 구획되지 않은 왕복 2차로 길의 가장자리를 따라 등교하는 학생 행렬이 이어지고, 바로 옆으로 차량들이 쌩쌩 달린다.

지난 1일 설치된 학교 정문 앞 신호등은 먹통이다. 이 학교 2학년 심혜영(8)양은 "마을버스가 바로 옆으로 빠르게 지나갈 때가 가장 무섭다" 고 했다.

사고위험 때문에 매일 아침 나온다는 문중근(文重根)교장은 "아이들이 다칠까 항상 조마조마하다" 며 "인도.가드레일.과속방지턱 설치 등 기본적인 안전시설이 없어 사고가 언제 날지 모른다" 고 말했다.

같은날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초등학교 앞. 통학로에 보도.차도 경계턱이 없어 어린 학생들과 차량이 뒤섞여 움직인다.

서울 서대문구 인왕초등학교의 교문에서는 쏟아져 나오는 어린이들이 노상 주차장에 출입하는 차량을 피해 곡예하듯 걷는다.

정부는 1995년부터 통학로에서의 어린이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어린이 보호구역 지정.관리에 관한 규칙' 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이 규칙은 어린이 보호구역(스쿨 존)으로 지정된 유치원.초등학교의 반경 3백m 이내 통학로에는 보.차도 경계턱과 20m 간격의 과속방지턱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스쿨 존을 지나가는 차량은 속도를 시속 30㎞ 이하로 줄여야 한다. 불법 주.정차와 노상 주차장도 금지되고, 학교 앞 횡단보도에는 신호등을 우선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명목상으론 어린이의 보행권과 안전을 보장하는 훌륭한 제도적 장치다.

그러나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소속 유재규(柳在珪.민주당)의원은 "스쿨존이 지정된 곳 가운데 대부분의 경우 과속방지턱이 2~3개에 불과하고 아예 없는 경우도 많다" 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스쿨존 내 교통사고는 매년 증가하고 있고, 학생들의 보행권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어린이교통안전연구소 허억 소장은 "학교 앞 횡단보도 색깔에 흰색과 노란색을 혼용하거나 스쿨 존 진입로 바닥에 홈을 파놓은 것과 같은 '지글 바' 를 설치하면 운전자들의 경각심을 높일 수 있다" 고 말했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여운웅 연구원은 "학교 부근 신호등.과속방지턱의 재원은 연간 2천8백억원이 넘는 교통범칙금을 활용하거나 경찰관 한명이 초등학교 한곳을 전담해 지속적인 단속을 실시하는 것도 방안" 이라고 제안했다.

하재식.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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