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LPGA 빛낼 스타들 <4> 저 박세리, 세리 키즈에게 배울 건 배우겠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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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가 메트로 웨스트 골프장에서 아이언샷을 한 뒤 날아가는 볼을 쳐다보며 웃고 있다. [올랜도=성호준 기자]

“난 이제 스무 살이 아니라고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메트로 웨스트 골프장 드라이빙 레인지. 팔꿈치 사이에 커다란 공을 낀 채 스윙 연습을 하던 박세리(33)가 힘이 드는지 그의 오랜 스윙 코치 톰 크리비에게 투덜거렸다. 크리비는 박세리의 캐디에게 “세리가 마치 마흔여덟 살이나 된 것처럼 말하네”라고 말하며 웃었다.

크리비는 박세리에게 초심을 주문했다. “상상해 봐. 지금 첫 티샷을 한다고 생각하고….” 크리비는 골프 대회에서 첫 티샷을 하기 전 사회자가 갤러리에게 하는 선수 소개말을 했다.

“여러분. 지금 티잉 그라운드에는 한국에서 온 박세리가 나와 있습니다.” 어드레스한 박세리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피어났다.

박세리는 이제 30대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미국에 온 후엔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어요. 아직도 스무 살 같아서 전지훈련 온 한국 20대 남자선수가 ‘누나’라 그러면 ‘내가 왜 누나냐. 네가 오빠 같다’고 발끈하기도 해요. 하지만 나를 어려워해서 인사도 못하고 피하던 LPGA 투어의 후배 선수들이 이제는 친언니처럼 편하게 대하는 것을 보면 시간이 많이 가고 내가 나이가 들긴 들었다고 실감하게 돼요. 스무 살에 미국에 와서 13년이 화살처럼 지나갔네요.”

요즘 박세리는 ‘박세리 키즈’에게 뒤지고 있다. 지난 시즌 신지애(LPGA 상금 1위), 최나연(6위), 김인경(8위), 김송희(11위), 지은희(13위) 등 그를 보고 골프를 시작한 젊은 선수들이 박세리를 추월해 멀찌감치 달려갔다. 박세리는 지난해 상금 랭킹이 30위였고 우승한 지도 2년여가 지났다. 2007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려놨지만 그후 별 활약은 없었다.

박세리는 사라져가는 노병이 된 걸까. 그는 쓱 웃으며 말했다. “그냥 갈 수는 없잖아요. 한국 후배 선수들이 귀여워서 자주 같이 밥을 먹는데 동생들은 엄청 먹기만 하고 도통 돈을 내지 않아요. 그 밥값 내기 위해서라도 돈 많이 벌어야 해요.” 박세리는 “올해 나의 목표는 넘버 원”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박세리 키즈에게도 배울 것은 배우겠다”고 말했다. 특히 좀처럼 실수하지 않는 신지애의 침착성을 배워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거칠 것 없이 밀려오는 20대 초반 선수들의 물결을 박세리가 이겨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감은 스무 살 때와 같다.

그는 “골프는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때가 30대라고 봐요. 바로 지금이 나의 전성기죠”라고 말했다. 스무 살 때의 박세리보다 서른셋 박세리의 골프가 더 강하다고 믿는 근거는 ‘여유’다.

“옛날엔 아무것도 몰랐잖아요. 무서운 것이 없어 좋기도 했지만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었고 너무 잘하려다 슬럼프에 빠졌죠. 욕심이 화를 부를 수 있다는 것, 여유가 있으면 어느 순간 반전할 수 있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어요.”

올랜도=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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