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고 강상호 전 북한 내무성 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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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북한정권 초기 10년간의 경험을 모은 회고록을 서울에서 발간하고 통일조국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 마지막 소원입니다."

1996년 5월 상트 페테르부르크 교외의 한 낡은 아파트에서 강상호(姜尙昊)옹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로부터 4년반이 흐른 지난 12일 그는 두가지 소원 중 하나도 이루지 못한 채 91년간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북한정권 고위간부, 숙청과 망명 등으로 이어진 그의 이력은 근세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는 생애의 마지막 10년을 '북한 민주화운동' 에 몸담아 국제적인 시선을 끌었다.

러시아.일본.중국에 흩어져 살던 전 북한 고위급 해외망명객들과 함께 '조선민주통일 구국전선' 을 만들어 공동의장으로 활동했으며 94년 10월에는 '북한민주화와 인권회복을 위한 서울대회' 를 여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09년 연해주에서 출생한 고인은 한인 3세로 원동공산대 당과(黨科)를 졸업했다. 시베리아 우스리스크구역 공청(共靑)농민청년부장을 맡았던 고인은 해방 후 소련정부의 명령으로 북한 지역에 파견돼 53년 8월 내무성 부상겸 정치국장으로 발탁됐다.

이때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계와 연안파 숙청의 악역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50년대 후반부터 북한 내부에서 반(反)소련파 분위기가 확산되자 59년 소련으로 되돌아갔다.

고인은 당시 목격한 북한정권의 숙청내막을 93년 본지('내가 치른 북한숙청'.35회)에 장기 연재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남겼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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