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드 테이블] 대규모 외국투자업체 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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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최근 경제가 다시 어려워지자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위기 극복 방안으로 외자 유치를 강조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 대규모로 투자한 외국 기업체의 대표들이 모여 한국의 투자환경에 대해 토론했다. 볼보건설기계 코리아의 에릭 닐슨 사장, 알리안츠 제일생명보험 한국지사의 미셸 캉페아뉘 사장, 클라크 머터리얼 핸들링 아시아의 캐빈 리어든 사장이 참석했다. 사회는 산업자원부 외국인 투자 옴부즈만 사무소의 김완순 박사가 맡았다.

볼보건설기계는 1998년 스웨덴 본사의 공장 문을 닫고 경남 창원으로 생산기지를 옮겼으며,클라크 머터리얼 핸들링 아시아는 같은 해 미국 켄터키주에 있던 본사의 연구개발(R&D)센터와 지게차 생산시설 상당 부분을 창원으로 이전했다. 알리안츠는 세계적 규모의 독일계 생명보험사로 지난해 제일생명을 인수했다.

-한국에 대규모 투자를 한 이유는.

▶에릭 닐슨=(본국에서 생산성이 떨어지면서)무엇보다 한국에 생산시설을 세우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서 수익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98년 당시 삼성중공업이 볼보건설기계의 핵심 사업인 굴삭기 부문을 매각하려 했던 것도 시기상 맞아 떨어졌다. 볼보건설기계는 당시 5억달러 넘게 투자했는데, 이는 한국을 교두보로 아시아 시장의 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서 였다.

▶캐빈 리어든=한국은 아시아 시장의 관문으로 필요한 요건들을 갖췄다. 동남아는 물론 남미 쪽으로의 수출도 가능한 게 장점이다. 이 때문에 우리 회사는 길게 보고 미국 본사의 상당 부분을 한국으로 옮겼다.

▶미셸 캉페아뉘=한국은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은 나라다. 현재 알리안츠 제일생명은 생명보험업계에서 4위지만, 매출액이 빠르게 늘고 있다. 2∼3년 뒤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 투자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닐슨=일이 진행되는 시스템이 상당히 관료주의적이어서 한국 사정을 잘 모를 때는 일하는 게 힘들었다.한국 정부는 업무 효율성을 보다 높여야 한다. 정부는 외국인 투자 관련 규제를 절반 이상 줄였다고 하는데, 느낌 상으로는 그만큼 규제가 풀린 것 같지 않다.

▶리어든=한국 기업은 경영의 투명성이 부족한 게 문제였다. 한국 기업을 인수하면서 그 회사의 껍질을 벗길 때마다(회사의 내용이)달라지는 것이 큰 걸림돌이었다. 상호 지급보증과 같은 내부 거래가 너무 많았다. 금융기관이 보다 철저한 감독 기능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캉페아뉘=복잡하고 허술한 회계 시스템이 문제다. 제대로 파악하고 접근하는 것이 어려웠다.전반적으로 한국 기업들은 회계 시스템을 투명하게 선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를 어떻게 보나.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닐슨=무엇보다 노동 문제에 정부가 지나치게 깊게 개입하는 것 같다. 정부가 노사 문제와 관련해 규제보다는 시장에 맡겨 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 경제는 매우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한국이 세계에서 제대로 경쟁하려면 보다 유연성있는 경제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캉페아뉘=한국 정부가 그동안 많은 개혁을 성공적으로 해왔지만,자본시장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는 아직 부족하다. 한국은 지난 수십년동안 양적으로는 엄청나게 성장했지만 생산성은 그만큼 높아지지 않았다. 이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양적 성장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기업들이 생산성 제고를 선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어든=한국 경제가 생산성을 높이려면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한국에선 구조조정이 단기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몇년동안 지속적으로 해야 이뤄지는 것이다. 인사 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 호봉 체제에서 벗어나 보다 젊고 능력있는 인재에게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능력있는 젊은이들이 몇년씩 승진을 기다리게 해선 안된다.

▶캉페아뉘=모든 기업 문화가 하루 아침에 바뀔 수는 없을 것이다. 법과 제도는 쉽게 바꿔도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변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노동법은 너무 경직돼있다.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고 보다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방향으로 노동법을 개선해야 한다.

-끝으로 한국 정부에 정책 제안을 한다면.

▶닐슨=정부는 세계 시장을 놓고 기업이 경쟁하는 입장에서 모든 것을 보아야 한다.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에 자꾸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비용을 치루는 일이다.기업들도 문제가 생길 경우 정부의 눈치만 볼 게 아니라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캉페아뉘=작년 한해 동안 외국인 투자 규모를 보면 지난 20년간 투자금액을 모두 합친 정도이지만 여전히 국내총생산(GDP)의 3%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예측 가능한 경제 시스템을 만들고,지속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해 외국인 투자를 보다 많이 이끌어내야 한다.

▶닐슨=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 시스템의 변화다. 한 나라의 경제 시스템이 생산성을 높이려면 경제 주체의 창의력이 풍부해야 하는데, 현재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창의력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 입시 위주의 교육 제도를 개혁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리어든=전적으로 동감한다. 장기적으로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젊은이의 창의력을 키워주는 교육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김완순 박사 <산업자원부 외국인 투자 옴부즈맨 사무소>

정리=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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