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서핑차이나] 未富先懶(미부선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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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부유하지도 않은데 먼저 게을러지다(未富先懶, 미부선라)’

지난 한 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8.7%p를 기록한 중국의 남모르는 고민이다. GDP 총액에서 일본을 바짝 뒤쫓은 중국이 이제 미국까지 넘본다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3800달러 수준이다. 그런 중국인들이 그동안 가난해도 바쁘게 일했지만(窮忙) 이제는 가난하면서도 게을러졌다(窮懶)는 자탄이 나오고 있다. 이를 타파하지 못하면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따르던 덩샤오핑(鄧小平)의 선부론(先富論·능력이 되는 사람부터 부자가 되라)이 용도 폐기되겠기에 지난 연말부터 사회기강 다잡기에 나섰다.

문제의 발단은 동맥경화에 걸린 계층 이동 기회다. 중국에선 최근 10년간 부동산의 자유거래, 의료와 교육의 시장화가 빠르게 진행됐지만 사회보장 제도는 자취를 감췄다. 노동자·농민의 중산층 진입은 봉쇄되고 중간계층은 무너져 내렸다.

부와 관직을 물려받은 ‘부자2세(富二代, 푸얼다이)'와 ‘관료2세(官二代, 관얼다이)’는 각종 사고의 주범으로 신문지상에 오른다. 한편 농사짓고 일하느라 학교도 못 가는 ‘가난뱅이2세(貧二代, 핀얼다이)’가 부지기수(不知其數)다. 저명한 중국역사가 레이 황(1918~2000)은 일찌기 “중국은 ‘서브마린 샌드위치’처럼 위는 관료, 아래는 농민으로 이뤄진 거대한 빵을 닮았다”고 지적했다. 중간 계층이 생겨나기 어려운 구조란 얘기다.

게으름과 더불어 사치도 중국을 위협하고 있다. ‘부유하지도 않은데 사치에 빠진 것(未富先奢)’이다. 이미 전세계 명품 네 개 중 한 개는 중국인이 구매한다. 과도한 사치품 소비는 위기의 전조다. 빚내기 좋아하는 미국의 소비 행태는 좋은 선례다.

공자(孔子)는 일찌기 『논어(論語)』에서 빈부(貧富)를 이렇게 논했다. 어느날 자공(子貢)이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으면(貧而無諂, 富而無驕)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공자는 “좋구나, 하지만 가난해도 즐거워하고, 부유해도 예를 좋아하는(貧而樂, 富而好禮) 사람만큼은 못하다”고 대답했다.

한국은 국민소득 2만달러 언저리에서 벌써 몇 년째 머물고 있다. 중국의 요즘 고민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근로(勤勞)와 근검(勤儉)으로 재무장할 때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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