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절감 새 돌파구 '가정집의 공장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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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요즘 충북 청주 시내 몇몇 아파트 단지에 들른 사람들은 방문한 집의 책상 위에 자그마한 조립기계들이 놓여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영세 부품업계에 번지는 가내 수공업식 생산 라인의 현장이다. 아파트 단지 등 인구 밀집지역의 주부들에게 생산 설비를 나눠주고 부품 조립 공정을 맡긴 뒤 중간 제품을 집집으로 옮기면서 완성품을 만들어가는 색다른 생산 방식이다.

주부들은 집에서 살림을 하면서 다른 부업보다 많은 월 50만원 안팎의 소득을 올릴 수 있고, 업체 입장에선 인건비를 크게 줄일 수 있어 좋다.

지난 1일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기업혁신대상 행사 때도 한 수상업체가 이 생산방식을 발표해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정상봉 전문위원은 "예전에는 가내 수공업이 생활용품처럼 단순한 물건을 조립하는데 활용됐지만 생산공구가 발달하면서 휴대폰 부품처럼 정밀제품에까지 활용도가 커지고 있다" 고 말했다.

◇ 저가 중국산에 맞선다=충북 청원군의 SH일렉트로닉스, 충북 청주의 인성전자.동인산업.사성전자, 경기도 안양의 동인일렉콤, 충남 조치원의 태성전자, 전북 정읍의 대홍전자 등이 가내 수공업체제를 도입해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업체로 꼽힌다.

휴대폰에 들어가는 트랜스포머와 코일류를 만드는 SH일렉트로닉스는 '다다 시스템' 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이 생산방식을 발전시키고 있다.

청주 용담동 등지의 아파트 단지 50여가구 주부들에 설비를 나눠주고, 15단계별 조립 공정을 1백% 가내 수공업으로 대체했다. 이 때문에 청원 공장에는 생산 라인이 없고 최종 완제품 조립과 제품검사만 한다. 이 회사의 정규 직원은 8명에 불과하다.

유무선 통신기기 부품을 만드는 인성전자도 청주시 복대동 아파트.단독주택 40여가구에서 조립 공정의 85%를 처리한다.

이곳 역시 정식 직원 17명뿐이다. 전기 차단기 부품을 만드는 동인산업도 가내 수공업 방식으로 원가 절감에 성공한 경우다.

박진우 서울대 교수(산업공학)는 "중국산 저가 제품의 도전을 받는 국내 중소 제조업계가 원가를 낮추면서 고용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 유력한 생산방식" 이라고 평가했다.

가사를 돌보면서 하루 5~8시간 틈틈이 집에서 일하는 주부들의 월평균 급여는 일감과 숙련도에 따라 30만~60만원으로 정규직 근로자의 절반 수준이다.

SH일렉트로닉스 이광성(42) 사장은 "전체적으로 30% 정도 제품원가를 줄여 달러당 원화가치가 9백원 이하로 높아져도 중국산과 가격 경쟁을 할 수 있다" 고 말했다.

◇ 설비가 좋아야 한다〓인성전자 김진열(43) 사장은 "가내 수공업 방식이 능률을 올릴 수 있는 분야는 대기업 주문을 받아 빠른 시간 안에 소량 다품종 생산을 해내야 하는 부품들" 이라고 말했다.

제품 주기가 짧은 통신기기 부품의 생산에 이런 방식이 빨리 번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SH일렉트로닉스가 다루는 부품의 사양만 1백가지가 넘는다.

또 중간제품을 운반하는 동선(動線)을 줄이기 위해 인구밀집 지역을 선택해야 한다.

특히 주부들에게 지급하는 생산설비는 생산성과 직결된다. 별다른 손재주가 없는 사람이라도 불량품 없이 제품을 많이 조립할 수 있도록 조작하기 쉽게 특수 설계한 공구가 필수적이라는 것. 이광성 사장은 "오랜 현장 경험을 통해 자체 개발한 이동 기기와 박스, 검사장비 등을 활용하고 있다" 고 말했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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