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츠, NFL 변방서 신데렐라로 … 남부 자존심 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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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의 트레이시 포터(가운데·22번)가 8일(한국시간) 열린 수퍼보울에서 4쿼터 인디애나폴리스 페이턴 매닝(오른쪽·18번)의 패스를 인터셉트한 뒤 동료와 팬들의 환호 속에 터치다운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마이애미(미국 플로리다주) AFP=연합뉴스]

‘세인츠와 그들의 도시는 기적을 믿었다.’(LA 타임스)

5년 전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습격으로 뉴올리언스는 모든 걸 잃었다. 2008년 희망이 싹텄다. 미국 대도시 중 가장 성장 속도가 빠른 도시로 떠올랐다. 2010년 뉴올리언스 세인츠(이하 세인츠)는 마침내 수퍼보울을 제패했다. 2005시즌 홈구장 수퍼돔을 이재민 수용소로 내주고 떠돌이로 전락했던 세인츠는 남부의 자존심을 되살렸다.

세인츠는 8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제44회 수퍼보울에서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이하 콜츠)를 31-17로 완파했다. 17년 만에 양대 콘퍼런스 1위 팀이 맞붙은 수퍼보울답게 역전, 재역전이 거듭된 명승부였다.

◆꼴찌의 반란=세인츠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됐다. 팀 창단 43년 만에 첫 우승이다. 명문 구단이 즐비한 미국프로풋볼(NFL)에서 세인츠는 만년 꼴찌 팀이었다. 매 시즌 5할 승률도 버거웠다. 유명 감독을 영입해도 성적은 제자리, 그야말로 ‘대책 없는’ 팀이었다. 플레이오프(PO)에 처음 진출한 것이 창단 20년 만인 1987시즌. 올 시즌 포함, PO 진출이 7번에 불과했다. 세인츠는 고비마다 위험도 높은 의외의 작전을 구사해 콜츠의 조직력을 무너뜨렸다. 3쿼터 컨버전킥 상황에서 온사이드킥을 선택했다. 최대한 멀리 차낸 뒤 공수를 바꾸는 게 일반적이지만 세인츠는 공을 살짝 차내 공격권을 지켰다. 터치다운으로 이어진 이 공격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흐름이 세인츠로 넘어왔다. 4쿼터 후반 터치다운에 성공한 세인츠는 다시 한번 콜츠를 농락했다. 1점짜리 보너스킥 대신 2점짜리 컨버전 공격을 선택한 세인츠는 작전을 성공시켰다. 스코어가 7점 차로 벌어지자 콜츠의 쿼터백 페이턴 매닝은 초조해졌다. 어이없는 그의 패스는 인터셉트당해 세인츠의 터치다운으로 이어졌다.

◆‘천재’를 압도한 세인츠의 ‘더블팀’=세인츠의 변칙 작전은 공격 전술에 도가 튼 세인츠의 션 페이턴 감독과 특급 쿼터백으로 성장한 드루 브리즈의 합작품이었다. 21세기 최고의 쿼터백으로 불리는 ‘천재’ 매닝도 2대 1 구도의 지략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2006시즌 올해의 감독상 수상자인 페이턴 감독은 NFL 무대에서 공격 부문 코디네이터(코치)로 명성을 쌓았다. 통상 공격 부문 작전은 담당 코디네이터가 지시하지만 페이턴 감독은 자신이 직접 콜을 내렸다.

수퍼보울 MVP가 된 브리즈도 그의 품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브리즈는 2006년 샌디에이고 차저스에서 쫓겨났다. 차저스의 차세대 간판 선수로 선택된 필립 리버스에게 밀린 것이다. 2006년 페이턴 감독과 함께 세인츠로 옮긴 브리즈는 주전으로 나서기 시작해 올스타(프로보울)에 3차례 뽑혔다. 올 시즌 32개 팀 주전 쿼터백 중 유일하게 패스 정확도 70%를 넘겼다. 페이턴 감독이 ‘머리’를 맡고, 브리즈가 ‘손’이 된 세인츠는 파죽지세로 수퍼보울을 향해 전진했다. 브리즈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카트리나로 인해 팀이 1년간 떠돌이 생활을 마치고) 선수들이 뉴올리언스로 돌아왔을 때 서로를 바라보며 반드시 팀을 일으켜 세우자고 맹세했다. 수퍼보울 우승은 (재건 작업의) 절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뉴올리언스가 고향인 매닝은 “세인츠의 실력이 대단했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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