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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대학만 죄인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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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김선하 정치부 기자

대학은 죄인이었다. 13일 열린 교육부와 열린우리당의 당정협의는 고교등급제를 실시한 대학들에 대한 성토 대회를 방불케 했다. 안병영 교육부총리부터 "평준화 체제에서 고교등급제는 자기모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열린우리당에선 "고작 5~6개 대학 때문에 이 난리"(최재성 의원)라는 말까지 나왔다.

열린우리당은 이날 고교등급제 실시 대학에 대한 특별 감사를 교육부에 요청했다. 현재 교육부 고시로 돼 있는 본고사.기여입학제.고교등급제 금지 등 이른바 '3불(不) 원칙'을 법령에 포함시켜 위반할 경우 제재조치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교육부도 "법제화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조배숙 당 제6정조위원장은 회의가 끝난 뒤 브리핑에서 "일부 대학과 일부 지역 고교들로 인해 정부 정책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일부 대학이 "내신 부풀리기와 고교 간 학력 격차 실태 공개를 검토하겠다"고 한 데 대해서도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대학의 고교등급제 실시를 두둔하자는 것은 아니다. 많은 국민이 해당 대학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당장 수험생.학부모들이 2학기 수시모집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 꼭 '특별 감사'를 서둘러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내신 부풀리기와 고교 간 학력 차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해당 대학만 몰아세운다고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다. 교육부도 이날 당정협의에서 "해당 대학들의 행보를 지켜보며 더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신중론을 폈다고 한 참석 의원이 전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계가 머리를 맞대고 조금이라도 나은 대안을 찾아내는 것이다. 책임 있는 여당이라면 교육부.대학.전교조 등 교육 주체들이 함께 해법을 모색할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한다. "해당 대학 관계자들과 만나 '변명'이라도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현재로선 만나볼 계획이 없다"는 열린우리당 측의 답변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김선하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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