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갈수록 불어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회사원 金모(34)씨는 요즘 월말만 되면 이 은행에서 저 은행으로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회사 형편이 어려워져 월급을 제대로 못받게 되면서 그는 A카드로 생활비를 빼서 쓴 뒤 B카드에서 현금서비스를 받아 메우고, 다시 B카드 대금은 C카드에서 돈을 빼 결제하는 '신용카드 돌려막기' 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金씨는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버틸지 막막하다" 며 "그나마 직장이 문을 닫으면 카드회사에서 신용카드도 더 이상 못쓰게 할 텐데, 그때는 이미 써버린 카드대금을 갚을 방법이 없다" 고 털어놓는다.

올 하반기 이후 경기가 급랭하면서 金씨처럼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로 가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실적도 급증하고 있으나 경기침체가 장기화해 실업이 늘어날 경우 가계부도로 이어질 우려도 커가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10월말 현재 국내 7개 카드회사의 현금서비스 매출액은 총 1백2조9천92억원.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33조1천5백42억원에 비해 무려 3배 이상(2백10%) 늘어난 규모다.

전체 신용카드 매출액(1백63조7천8백5억원) 중 현금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도 62%로 지난해의 51%에 비해 급격히 증가했다.

신용카드 업계에선 대개 경기가 악화하면 몇개월 간격으로 '현금서비스와 할부구매가 늘고→부실채권이 증가하며→카드 이용액 자체가 크게 줄어드는' 사이클이 반복된다는 점을 들어 내년 초부터는 카드대금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속출, 무더기로 돈을 떼일 것을 우려하고 있다.

여신전문금융협회 박세동 이사는 "대개 신용카드 연체율이 높아지는 것은 경기가 악화한 뒤 6개월 가량은 지나야 가시화된다" 면서 "외환위기 직후 20%까지 치솟았던 카드사들의 연체율이 아직까지는 예년과 유사한 5~6%대에 머물고 있지만 최근의 현금서비스 급증 추세로 보아 내년엔 크게 높아질 것" 이라고 내다봤다.

게다가 신용카드 회사들은 지난해 4월 정부가 70만원으로 묶여 있던 현금서비스 한도를 소비진작 차원에서 폐지하자 올해 상반기에 앞다퉈 개인별 한도를 최고 1천만원까지 대폭 늘려놓아 대량 실업사태가 발생할 경우 심각한 피해를 받을 전망이다.

최근 부도.실직 등으로 법원에 개인 파산(소비자파산)을 신청하는 사람의 숫자도 증가 추세여서 가계부도 사태가 현실화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개인파산 신청은 외환위기 당시 한달에 40여건까지 치솟았다가 올해초 한자릿수로 줄어들었으나 9월 14건, 11월 12건 등 최근들어 다시 증가하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지난 10월 이후 개인파산 신청비용이 70여만원으로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청건수가 줄지 않고 있다" 고 말했다.

카드사들은 이에 따라 이미 대금을 연체하기 시작한 고객을 대상으로 대금을 갚도록 독촉하고 있으나 실제 회수실적은 높지 않아 어려워진 경제사정을 실감하고 있다.

H은행 연체대금 관리담당 직원 朴모씨는 "과거엔 연체사실을 알려주면 미안해하며 언제까지 갚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돈이 없으니 마냥 기다리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 걱정" 이라고 털어놓았다.

신예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