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랜드마크를 찾아서] 10. 프랑스 파리 퐁피두 센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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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진화하는 문화 공간' '문화를 생산하는 기계'

프랑스 파리, 그 속에서도 가장 고풍스런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마레 지구의 한켠에 전위적 모습으로 등장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퐁피두 센터가 1977년 개관 당시부터 표방했던 기본 개념이다.

외장의 과감한 생략으로 벽 속에 숨어있어야할 철근 골조와 파이프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마치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듯한 건물의 외양도 바로 '현재진행형' 인 진화의 상징이었다.

2000년. 퐁피두 센터는 탄생 23년만에 첫번째 진화를 실현함으로써 스스로 시간의 흐름에 걸맞게 변화하는 존재임을 입증했다.

27개월에 걸친 대대적 수리.보수 작업을 거쳐 새천년 첫해인 올 1월 새단장한 모습으로 재개관한 것이다.

수리 비용만으로 5억7천6백만 프랑(약 8백70억원)이 들었다. 처음 건물을 짓는데 부지 매입비를 포함해 9억9천3백만 프랑이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변화' 에 쏟아부은 노력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전혀 다른 모습의 퐁피두 센터를 기대한 사람은 이내 실망하게 된다. 페인트만 다시 칠해 색깔이 좀더 산뜻해졌을 뿐 겉모습의 변화는 전혀 없다.

"퐁피두 센터는 이미 역사적인 건축물이 됐다. 역사적 기념비의 외관을 뜯어고칠 수는 없는 일이다."

처음 설계자인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 렌조 피아노와 함께 보수 책임을 맡은 장 프랑수아 보댕은 "줄거리를 바꾸는 게 아니라, 문맥만 고치는 것이 보수작업의 핵심이었다" 고 설명했다.

진화라는 것이 그렇듯 개선의 여지가 생긴 부분만 바꿨다는 얘기다. 개선이 필요한 문제점은 역설적으로 퐁피두 센터가 출범 20여년만에 파리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건축물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대성공을 거둔데서 비롯됐다.

당초 하루 5천명의 방문객을 소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지만 문을 열자마자 하루 평균 2만5천명이 넘은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수리를 위해 잠시 문을 닫기 전인 95년까지 퐁피두 센터를 찾은 사람이 1억4천5백만명에 이른다.

매년 8백만명 이상이 다녀간 셈이다. 퐁피두 센터 입장객 행렬은 해마다 길어졌고 관광객들까지 가세하는 오후에는 입장하는데만 1시간이 넘게 걸리기 일쑤였다.

이같은 동맥경화를 치료하기 위해 퐁피두 센터의 두 핵심 부문인 국립현대미술관과 정보 도서관의 접근로를 분리하는 수술이 시행됐다. 행정부서는 아예 다른 건물로 이전했다.

이와 함께 도서관 열람석을 2백석 늘려 총 2천석 규모로 확장했으며 미술관 내부도 작품 감상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공간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도록 새롭게 꾸몄다.

특히 도서관의 경우 단순한 열람 기능에서 탈피, 정보화 시대에 걸맞도록 4백여대의 최신 멀티미디어 컴퓨터를 설치, 인터넷 검색과 각종 자료의 열람을 가능케 했으며 위성방송 시스템을 이용, 세계 10여개국의 뉴스를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본론을 벗어난 얘기지만 도서관 LCD 모니터에는 삼성이라는 마크가 선명해 도서관을 찾은 한국인 유학생이나 한국관광객들을 잠시 우쭐하게 하고 광고 효과도 톡톡히 거두고 있다.

미술관과 도서관 외에 영화와 연극.무용.음악회 등을 위한 공간은 모두 지하 1층으로 한자리에 모았다. 이같은 변화는 퐁피두 센터의 혈액 순환을 보다 원활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재개관을 기념, 일반에 무료 공개한 1월 1, 2일 이틀 동안 퐁피두 센터를 찾은 8만여명의 관람객을 큰 무리 없이 소화해 낼 수 있었다.

퐁피두 센터의 개조.보수는 프랑스가 새천년에 대비하기 위한 프랑스 정부의 가장 큰 역점 사업 중 하나였다. 그것은 퐁피두 센터가 21세기 문화대국을 자처하는 프랑스의 문화 첨병이기 때문이다.

루브르가 과거의 기록을 담고있는 박물관이라면 퐁피두는 미래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늘 열려있는 공간이다.

샤갈과 피카소 등 대가의 상설 전시 외에도 현대 예술가들의 개인전.발표회가 끊임없이 열리고 현대 문제와 관련된 토론회와 퍼포먼스 등이 매일같이 행해진다.

예술 전공자뿐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과 어린 학생들을 위한 예술강좌 역시 연일 만원이다. 관광 명소로서도 한몫 단단히 해 퐁피두 센터앞 광장에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젊은이들로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처럼 퐁피두 센터가 파리를 대표하는 현대 문화 공간으로서 자리잡자 21세기적 이미지를 심기위한 기업들의 후원이 줄을 잇고있다.

이번 공사에서도 이브 생 로랑이 전시실 개조를 위해 1천만 프랑을 지원하는 등 기업들의 기부금이 5천만 프랑에 달했다.

하지만 퐁피두 센터도 에펠탑이나 몽마르트르 언덕의 사크레 쾨르 성당처럼 개관 당시에는 거센 비난에 부딪혔다.

파리의 아름다움에 자부심이 대단한 보수적인 프랑스인들에게 짓다만 창고 같은 모양의 파격적인 건축은 눈에 거슬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이제 퐁피두 센터가 "시대의 필요에 맞게 끝없는 변화를 추구해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교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파리가 과거에만 집착하는 도시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는 장 자크 아야공 관장의 말에 동의하지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렌조 피아노는 "처음 설계 당시 정보 소통이 오늘날처럼 인터넷에 점령당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며 "앞으로 이뤄질 문화.정보 혁명에 발맞춰 퐁피두 센터는 제2, 제3의 진화를 거듭하게될 것" 이라고 단언했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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