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를 긴장하게 하는 아마추어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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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호 35면

‘얼짱’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젊은 층부터 30∼40대까지 ‘자기 홍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개인적 공간으로만 생각했던 미니홈피, 인터넷 카페, 블로그가 자신을 공개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스스로를 직접 홍보하며 하나의 상품이 되길 자처하는 것이다. ‘얼짱’ 출신들이 아예 직업을 연예인으로 바꾸는 데서 알 수 있듯, 인터넷은 트렌디하고 개성 넘치는 사람을 상품으로 내놓는 통로다.

나는 시간 날 때마다 인터넷 사이트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음악을 들어보기 위해서다. 이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것 중 하나가 새로운 아티스트들이다. 조금은 아마추어 냄새가 나면서도 풋풋하고 새로운 감성을 담고 있는 음악이 좋다. 완성도의 높고 낮음은 중요하지 않다. 신선한 느낌이 음악적 수준을 보완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의 아늑한 방에서 음악을 만들어 홈 스튜디오를 설치해 온라인에서만 작품을 배포하는 아마추어 아티스트가 늘어나고 있다. 작곡과 녹음만 가능한, 가장 기본적인 장비만 있어도 직접 디지털 앨범을 제작하고 온라인에서 공개할 수 있다. 이 또한 ‘얼짱’이 했던 자기 홍보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은 긍정적이지만 직업 음악인들은 바짝 긴장한다. 그러나 프로 아티스트들은 속속 나오는 아마추어에게 감사해야 한다. 선의의 경쟁이 어디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이던가.

지난번 글에서 소개했듯 음반 시장에서도 전문 가수보다 더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폴 포츠나 수전 보일(영국)을 봐도 프로와 아마추어의 벽은 이미 사라졌다. 얼마 전 발매된 어느 일본 아티스트의 신보에는 아마추어 연주자들과 함께 녹음한 곡도 수록돼 있다. 수준이 떨어지기는커녕 색다른 맛이 쏠쏠하다. 영국의 ‘브리튼스 갓 탤런트’,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돌’, 우리나라 케이블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던 ‘슈퍼스타K’는 실력 있는 아마추어를 발굴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대중이 이런 프로그램에 높은 시청률을 선물하며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아마추어와 프로를 구분하는 ‘옛 생각’에서 벗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든지 실력이 된다면 세상의 인정을 받고 인기를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 보면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어려서부터 음악 교육을 받아 음악가로 성장한 사람이 있다. 또 성인이 된 후 애호가로, 취미 생활로 음악을 하다 나중에 더 깊이 빠져들어 전문 음악가가 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작품만 듣고 음악을 시작한 시점을 짐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애호가와 전문가, 즉 ‘아마추어’와 ‘프로’의 개념 자체가 무너지고, 거리가 좁혀졌을 뿐 아니라 이제는 아예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근래 들어 ‘프로’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마추어’들의 실력은 여러 분야에서 발휘되고 있다. 특히 악기 연주 관련 블로그와 카페를 통해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인다. 연주회를 여는 것은 물론 인터넷 공간을 통해 프로 연주자로 데뷔하기도 한다. 한 음반기획사에서는 홈페이지에 오디션 게시판을 만들어 누구든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홍보하고 데뷔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일본의 오타쿠 문화처럼 한국에도 특정 음악에 대한 매니어층이 늘어났다. 이 매니어들이 인터넷을 통해 활발히 활동한다. 자신들만이 알고 있는 자세한 정보를 공유하고 나누면서 더욱 세밀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얻는다.

스포츠와 비교할 때 음악세계에서의 아마추어와 프로는 훨씬 밀접하다. 야구는 마이너리그· 메이저리그로 나뉘고, 축구는 1부·2부 리그로 갈린다. 스포츠에서는 아마추어와 프로가 경합을 벌이는 일이 드물다. 하지만 음악에서는 누구든지, 직업이 무엇이든, 잘하든 못하든 노래를 만들 수 있다. 앨범을 제작할 수도 있다. 대중과 만나는 홍보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평생 음악을 익히고 연습하면서 살아온 음악인에게는 매우 억울한 현상일 수 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미디어와 음악 기술은 음악 애호가들이 아마추어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모든 이가 각자 자신의 컴퓨터를 이용해 손쉽게 음악을 만들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맞춤형 음악을 듣는 날이 오지 않을까. 누군가 만들어서 들려주는 음악을 들을 때보다, 훨씬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경험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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