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엔 인문학 향기가 더해져야 인간 오감 만족 주고 생명력 오래 유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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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호 24면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이 ‘인문학 경영’을 얘기하며 밝게 웃고 있다. 오른쪽 작은 사진들은 인문학이 접목된 현대건설의 대표 브랜드 ‘힐스테이트’의 편의 시설.

김중겸(60) 현대건설 사장은 34년간 ‘공사판’에서 삶을 일궜다. 1976년 고려대 건축공학과를 나와 현대건설에 입사한 뒤 줄곧 중동 등 국내외 건설 현장을 오가며 경험을 쌓았다. 그런 그가 요즘 ‘인문학’을 입에 달고 산다. 올해는 국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신입사원 채용 때 인문학 전공자를 적극적으로 뽑았다. 그동안 현대건설은 공대·상대·법대 전공자 위주로 신입사원을 뽑아 현재 현대건설 직원의 90% 이상이 이 부문 출신이다.

“인문학에 경영의 길이 있다”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

지난해 인문학을 전공한 신입사원 비중은 1% 내외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10% 내외로 대폭 늘렸다. 어문 계열뿐만 아니라 철학·심리학 전공자, 심지어 조각가까지 뽑았다. 그는 “앞으로도 인문학 출신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려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입사원 교육 커리큘럼(교육 기간 1월 4일~3월 12일)도 국립중앙박물관 관람, 서울대 인문학 과정 등 인문학 중심으로 확 바꿨다. 지난해 3월 그가 취임하기 전까지 현대건설은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전통적인 ‘현대 스타일’의 경영을 했다. 그런 현대건설에 어떤 변화가 있는 걸까. 공대에 해병대까지 나온 그는 왜 인문학을 강조하는 걸까. 다음은 일문일답.
 
-왜 인문학인가.
“사실 예전에는 인문학 전공자를 뽑을 필요가 없었다. 예전엔 몸으로 때우는 일만 하면 됐는데 이제는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 건설업도 단순한 공사 개념에서 사업 개념으로 가야 한다. 건설업 근무자는 단순한 디벨로퍼(개발자)에서 프로듀서(연출가)로 바뀌어야 한다. 업무도 단순 시공에서 디자인엔지니어링, 프로젝트매니지먼트 등 포괄적 업무로 바뀌고 있다. 평면적이거나 획일적인 것에서 다양성의 시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응용과학인 공학이나 경영학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들 학문은 인간에 대한 깊은 고뇌를 하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심리를 다루고 소비자 입장에서 판단하는 사람이 필요한 이유다.”

-사내에서 이번 신입사원 채용이 파격이라는 말도 들리는데.
“올해 전체 선발 인원의 10% (신입사원 168명 중 15명 내외를 인문학 전공자로 뽑았다. 예전에는 인문학 전공자가 거의 없었다. 사회·심리·철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공예 전공자, 조각가까지 뽑았다. 신입사원 교육도 대폭 바꿨다. 서울대 인문학 과정을 참조해 집중적으로 교육할 예정이다.”

-공예나 조각 전공자가 현장에 필요한가.
“필요하다. 예전엔 단순 기술로 건물을 지었다면 이제는 문화·역사를 고려해 전체 도시개발 측면에서 사업을 펼쳐야 한다. 그러려면 앞으로는 건설에 조형이라는 개념이 들어가야 한다. 이젠 특정 기능만 있는 건축물은 의미가 없다. 건설은 단순히 집을 지어 주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오감·육감을 만족시키는 가정을 꾸려 주는 것이다. 공장이나 집이 기계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이 돼야 한다. 인간 중심의 소프트파워를 무시한 채 하드웨어 구축에만 몰입하면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인문학 전공자는 어떤 부문에 적합하나.
“상품개발실에는 건축공학과 출신만이 아니라 종교학이나 사회학, 철학, 조각 전공자도 적극 배치할 필요가 있다. 건설업체는 거주자가 마음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거주지도 소득·지역별로 다르다. 어떤 형태의 군락이 가장 적합한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 전공자를 얼마나 더 뽑을 것인가.
“구체적인 수치를 밝힐 수는 없지만 계속 늘릴 계획이다. 각 사업본부에서 왜 인문학이 필요한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 더욱 과감하게 인문학 전공자를 요청할 것이다. 또 앞으로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인문대나 상대·법대 등 계열 구분 없이 뽑을 계획이다.”

-직원 교육도 강화하나.
“직원 교육을 강화하려고 보니 현재 현대건설 내에 교육학 전공자가 한 명도 없더라(웃음). 그동안 직원의 생산성을 얘기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직원의 미래 가치를 높이는 투자를 해야 한다. 전체 직원의 80%만 일하고 나머지 20%는 교육을 받거나 연구를 하고, 휴가를 보내면서 재충전하도록 하겠다.”

-효과는 있나.
“전체적으로 진작 이랬어야 하는데 하는 반응이다. 현대건설은 세계 곳곳에서 사업을 하기 때문에 외국인 직원도 많다. 여러 나라에서 여러 인종의 직원이 뒤섞여 일하고 있다. 현재 해외 직원이 4만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직원 간 문화 차이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외국인 직원의 윤리·역사·관습을 몰라 노사 문화에 어려움이 있기도 하다. 요즘 국내 직원이 해외에 가면 매니저 역할을 많이 한다. 그런 일을 하려면 그 나라의 역사·종교 등 문화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이런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외국인은 한국 기업 문화를 익히고 현지 법인장으로 보낸다든지 하면 더욱 효율적일 것이다.”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4년 6월부터 ‘힐스테이트’ 브랜드 론칭 작업을 했다. 그때 어떻게 인간이 편리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니 인문학이 떠올랐다. 건설은 공학보다는 오히려 사람을 연구하는 인문학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모든 건축물은 공학의 토대 위에서 안정성을 확보하지만 철학·예술·역사·종교 등 인문학적 가치가 더해지지 않는다면 쉽게 생명력을 잃는다. 하지만 이를 물어볼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대부분이 공대나 상대 출신이었다. 결국 2006년 9월 힐스테이트를 론칭했지만 인문학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인문학을 직접 배우기도 했나.
“2008년 서울대 경영대학원에서 최고경영자과정(AMP)을 듣고 있을 때 서울대 인문대학원의 최고지도자인문학과정(AFP)이 눈에 띄었다. 바로 이 과정을 신청했다. 지난해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창조적경영지도자과정을 듣기도 했다. 시간을 내 오후 6시30분부터 10시30분까지 박물관을 보면서 강의를 들었다.”

-매주 수요일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직원과 조찬간담회를 하는데.
“직원과 접촉을 더욱 많이 하기 위해서다. 이때 직원에게 주로 책을 선물한다. 상품개발실 직원에게는 상품 관련 지식이 아니라 세계의 흐름 등을 이해해 창조적 상상력을 가질 수 있도록 『글로벌 트렌드 2025』 같은 책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해병대를 나온 이력이 독특하다. 이유는.
“사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마음이 여리다’는 말을 아버지로부터 자주 들었다. 해병대에 가서 정신적으로 무장해 보겠다고 생각하고 자원했다. 효과는 매우 컸다. 중동 등에서 근무할 때 ‘내가 해병대에서도 어려움을 극복했는데 월급도 받으면서 일하는데 뭐가 힘드나’ 하고 생각하며 어려움을 이겨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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