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한국 유일의 와카시인 손호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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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서울 구기동의 오래된 전통가옥에서 홀로 일본의 와카(和歌)를 짓고 있는 손호연(孫戶姸.77)씨.

고령에 온갖 잔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孫씨지만 측근들이 "잠도 안 주무시면서 와카를 짓는다" 고 걱정할 정도로 시작(詩作)에 열정을 쏟고 있는 중이다.

와카란 보통 31자의 일본어로 이뤄지는 5.7조의 짧은 시로, 일본에서는 국시(國詩)로 불리운다.

孫씨는 이 와카를 50여년간 지어온 국내 유일의 와카시인.

그는 지금까지 저서 '무궁화집' (총5권)을 통해 약 2천여수의 와카를 남겼다. 그 내용은 대부분 한복.장독대 등 우리 전통문화를 소재로 민족감정을 표현한 것 들이다.

"와카는 신라의 향가(鄕歌)가 기원입니다. 저는 오히려 고대 일본에게 문화를 전해준 한민족의 후예로서 자부심을 갖고 일본사람들에게 우리민족의 감정을 전달해 왔습니다. "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국사람이 왜 일본 시를 짓느냐" 는 눈총에 시달려온 孫씨인 탓인지 무엇보다 와카의 '뿌리' 를 강조했다.

孫씨가 와카를 짓게된 계기는 도쿄 제국여자대학에 유학하던 1941년에 일본 최고의 고전문학가 사사키 노부쓰나를 만나면서부터다.

"와카를 통해 당신 조국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십시요. 그것은 일본인이 절대로 표현할 수도, 모방할 수도 없습니다. "

孫씨는 사사키 노부쓰나의 충고를 마음에 새기고 해방 후 모국으로 건너와 본격적으로 시작에 전념했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와카를 읊는 귀한 한국인' 으로 주목하면서 일본 굴지의 출판사인 고단샤(講談社)가 1980년대에 와카의 최고작품만 엄선한 '소화만엽집' 을 발간하면서 그의 노래 다섯 수를 수록했다.

특히 98년엔 일본 천황이 주재하는 궁중 '가회시' (와카낭송회)에 한국인으론 유일하게 그를 초청했다. 모국에서도 무려 50년이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문화광광부가 지난달 일본의 전통시를 이용해 한국민의 정서를 일본에 심어온 공적을 기려 화관문화훈장을 수여한 것.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북녁에서도 별은 가까이서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 마음은 똑같지요. 내가 노래하고 픈 것도 별과 하늘에서 느끼는 공평함, 국경을 초월한 인간의 정서와 희로애락입니다"

노시인이 희수(喜壽)의 나이에 이르도록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저력은 바로 이런 보편적 인류애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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