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칼럼] 재미있게 사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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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세기도 앞으로 1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미래학자와 역사학자들이, 세기말에 부쳐서 문명의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듯 우리들도 이 백년에 한번의 기회에 자신의 생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이전에 이 칼럼에서 썼듯이 나는 올해 여름에 NHK라는 대조직을 그만두고, 일본인이지만 남은 반생을 한국에서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런 특수한 경우 덕분에 "누구보다도 '삶' 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다" 고 말할 수 있겠다. 회사를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나의 상사가 한 말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잘 모르는구먼. NHK는 좋은 회사야. 뭐니뭐니 해도 코를 후비면서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왜 그만두는 거지?" 본인은 농담이었겠지만, 나는 무척 충격을 받았다.

실은 이 말에는 두가지의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저널리즘이라는 일이 단순한 '밥벌이' 와 동일시되고 있는 점. 또 하나는 코나 후비면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아도, NHK는 망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세계가 격렬히 변화하고 많은 사람들이 삶의 방향을 잃고 고뇌하고 있는 현실에 저널리스트로서 너무나도 무관심하며 무책임한 자세라고 할 수밖에 없겠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 내가 딸과 나눈 대화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아빠, 왜 회사 그만뒀어?"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순간적으로 당황하면서도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회사가 재미 없으니까. " "그렇지만 일은 원래 재미없는 거잖아. " "그렇지 않아. 일은 재미있어야 하고, 재미없으면 안되는 거야. " "응, 하긴 그러네. 공부도 재미있으니까. "

딸이 공부에 재미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아 안심했지만 그보다도 스스로 대답해 놓고도 꽤 납득한 것이 재미있었다.

그래, 사는 건 재미있어야 하고 재미있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나는 어린이가 아니니까, 알고 있다.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러운지. 그런 어려움을 일시적이나마 잊고 즐겁게 살자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인생의 고통만을 느낀다는 것은, 혹시 살아가는 방법에 있어 무언가 근본적인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20세기. 우리들은 너무나도 더 큰 것, 더 높은 것, 더 강한 것만에 사는 가치를 두고 그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땀을 흘려온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한만 남고 기준을 달성한 사람은 코를 후비고 있는 것이겠지.

갑자기 이야기가 바뀌지만 20여년 전부터 말기 암환자의 의료현장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말에 'quality of life' 라는 것이 있다.

직역하면 삶의 질이지만 나는 생의 가치라고 해석하고 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암 말기로 치료의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관해서는 무조건 생명 연장에만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시간을 가치있게 보낼 수 있도록 의사 및 가족과 지역공동체가 돕자는 것이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많은 실례를 종합하면, 환자들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자연과 접하며 시나 그림 등의 자기표현을 통해 최종적으로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짧지만 평화롭고 충실한 생을 누릴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여기서 말기 암환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삶' 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중요한 힌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택시 안에서 라디오를 듣는데 청취자가 자작시를 낭독하는 코너가 나왔다. 광주에 사는 주부가 평소 밖에서 사먹는 삼겹살을 집에서 구워 남편과 소주를 마시면서 느끼는 행복을 시로 쓴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선 시가 서민의 것이 되어 있구나' 라고 감탄했다.

'인생의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나누는 것에, 또 그 행복을 언어나 음악.그림 등의 매체를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것에 있다' 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을 깨닫게 되면, 그래서 표현하는 방법이나 나누는 능력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일이나 공부의 목적이라고 알게 되면 '삶' 을 살아가는 것은 정말 자유롭고 재미있고 가치있는 것이 된다.

나는 이런 일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저널리스트의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키시 토시로 <일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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