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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서 펴낸 가수 조영남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대중가수 조영남(56.사진)이 신학서를 펴냈다니 그의 말을 빌리자면 '웃기는 일' 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조영남, 예수의 샅바를 잡다' (나무와 숲.8천5백원)를 관심있게 읽는 기자에게 한 동료가 "말은 되나?" 하고 물은 것도 이해 못할 것 없다.

그 때 기자가 즉흥적으로 말을 받았다. "고루한 신학자들이 쓴 책보다 외려 낫다." 사실이다. 편견없이 접근한다면 과연 그렇다.

실은 조영남은 예수 책을 쓸 만한 사람이다. 알려진 대로 그는 1980년 미 트리니티 신학대 졸업과 함께 목사 자격증을 받았다.

73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여의도 선교집회 때 성가를 부른 인연으로 따낸 유학 티켓이었다.

게다가 미술작가이자 평론도 하는 팔방미인인 그의 글솜씨도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서문에서 저자는 '누가 뭐라든 조영남 방식으로 썼다' 고 했지만, 그것은 거룩한 테마에 눌리지 않았다는 자신감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번 신간은 전면 개작(改作)을 거쳐 나온 수정본. 유학 당시 써놓은 원고가 단행본으로 묶여 나온 것은 20년전. 그때 원고를 본 소설가 조정래(당시 민예사 대표)가 두말 않고 '어느 한국청년이 본 예수' 라고 제목을 달아 출판을 해줬던 책이다.

하지만 "조영남이 이런 고상한 공부를?" 하며 뒤로 나자빠진 사람도 없었고, 외려 사회적 무시를 당한 채로 끝났다.

개작이 아니라 새로 쓴 흔적이 역력한 이 책은 98년에 만나 '연하(年下)의 스승' 으로 모셔왔다는 동양철학자 도올 김용옥의 영향이 짙어보인다.

노장(老莊)과 유학사상을 넘나드는 퓨전식 서술이 그렇고, 놀랍게도 민족종교 계열의 수운(水雲) 최제우.강증산도 언급되고 있어 이 책이 기성 제도권의 신학 도그마로부터 자유로움을 보여준다. 사실 그는 도올 이전에 종교철학자 오강남(캐나다대)과도 오랜 교유를 해왔다.

신간은 기본적으로 신약 복음서의 예수 행적을 남의 눈치 보는 것과 담 쌓은 채 '조영남 스타일' 로 요리한 입문서. 그러면서도 근거없이 튀려는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외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체 게바라의 자진 입산에 비유하거나, '돌아온 탕아' 를 자신의 이혼경력과 결부시켜 설명하는 방식 등은 설득력이 높다.

읽을거리를 넘어 계몽적 저작으로도 추천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그것을 '샅바 잡기' 라고 말한다.

"나의 작업은 예수를 허공에다 올려놓기보다는, 씨름꾼이 샅바 잡듯 바짝 끌어당겨 바로 보는 것이다. 예수와 정면 대결하는 것이란, 예수 내면의 품성으로 헤아려 감으로써 그를 닮아가려는 의지를 말한다. "

즉 '역사 속 예수' 를 실물크기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다행히 조영남식 예수론은 불트만 등 현대신학의 근거를 토대로 한 탐색이라서 '나혼자 떠들고 마는' 공허한 입담과 구분된다.

무엇보다 괄목할 만한 것은 그가 예수와 기독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모색과도 잘 어울린다는 발견이다.

충청도 삽교에서 전형적인 '예수쟁이' 였다는 어머니에 대한 회고와 연결되는 다음 대목을 각별히 주목하자.

"나도 내 어머니 김정신 집사처럼 예수만 믿다 죽을 것이냐. 그건 아니다. 내게는 선택권이 무진장 있다. 어머니는 예수라는 보세가공품을 즉시 구매했으나, 나는 지금도 이 물건 저 물건을 고르고 있다. 석가나 공자도 좋고, 후미진 곳에 틀어박혀 있는 최제우.최시형.강증산.나철 같은 국산품에도 듬뿍 정이 가서 못내 돌아서지 못하고 있다. 단 목적지는 한 곳이다. "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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