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재현의 시시각각

토굴과 임대아파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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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중간고사 아니면 학기말고사를 앞두고였던 듯하다. S가 “우리 집에 가서 같이 시험공부 하자”고 제의했다. 공부하다 함께 자고 아침 일찍 집에 가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좋다고 했다. 어머니 허락까지 받고 S의 집으로 향했다. 야산을 한두 개 넘어서 도착한 그의 집은 언덕 밑 토굴, 일제 때 파놓았다는 빈 방공호였다. 벽은 시멘트도 바르지 않은 맨 흙이었다. 사과상자 두어 개가 책상 겸 밥상이었다. 화전 일구는 기술밖에 없던 S의 아버지는 리어카를 구해 엿장수 일을 하고 있었다. S의 어머니가 반갑게 맞이하며 엿을 몇 개 주셔서 달게 먹었다. 전기가 없어 촛불 밑에 책을 폈다.

밤이 깊을수록 왠지 불안해졌다. 우리 집도 가끔 끼니를 거르는 처지였지만 이 집만큼은 아니었다. 정체 모를 뒤숭숭한 기분에 시달리다 한밤중에 “그만 집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가마니를 늘어뜨린 현관(?) 문을 젖히고 막무가내로 길을 나선 나를 말리며 한동안 따라오던 S는 끝내 울먹이고 말았다. 집까지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밤길이었다. 유난히 밝은 달이 귀갓길 내내 나를 바싹 따라왔다. 마치 나무라는 듯했다. 수십 년 후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건실한 직장인이 된 S를 만났다. 그도 그날 밤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마음이 참 아팠다고 했다.

몇몇 언론에 짧게 보도된 기사를 기억하시는지. 지난달 2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가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을 내렸다. 아파트 등 주거지 옆에 임대주택이 지어질 경우 기존 주거지 주민들이 집값 하락 등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었다. 서울의 한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주민 14명이 서울시와 구청, 재개발조합, 건설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이었다. 재판부의 결론은 명쾌하고 단호했다. “임대주택은 도심지역의 재개발사업과 함께 반드시 건설되어야 하는 것으로 그 공익적 성격이 매우 높다. 기존 거주자들이 어느 정도 불편함을 느낀다거나 경제적 손실이 수반된다 하더라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감수해야 하며, 따라서 그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그로 인한 주장이 정당화될 수 없다.”

36쪽에 달하는 판결문을 찬찬히 읽으면서 나는 먼 옛날 S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S네 식구가 살던 토굴은 오늘날 임대주택이나 작은 평수 아파트로 진화했다. 그러나 곳곳에서 일반분양 아파트와 임대아파트 사이를 담으로 막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식을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없는 학교에 보내려고 기들을 쓴다. 영구 임대아파트 아이들은 ‘영구’라는 별명으로 놀림받기도 한다.

2003년 10월 이명박(MB) 당시 서울시장이 베를린 시장의 초청으로 독일을 방문했다. 차창 밖으로 멋진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베를린 시청 직원이 MB에게 “제일 고급이고 전통 있는 아파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남루한 차림의 여인이 아파트에서 나왔다. MB가 무심코 “가정부인 모양이네”라고 혼잣말을 하자 시청 직원은 “아파트 주민일 겁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아파트 안에 고소득층이 사는 비싼 아파트와 월세가 싼 공공 임대아파트가 흔하게 섞여 있다는 설명이었다. 사회적 약자와 강자가 함께 비벼대며 사는 것이다. 프랑스도 비슷하다고 한다.

나는 어쭙잖은 도덕주의나 명분론에 입각해 주장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의 강자들이 정말 냉정하고 영악하게 계산할 줄 안다면, ‘영구’를 받아들이고 어울려 살아야 한다. 그게 결국 서로에게 이익이고, 미래를 탄탄하게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