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논산서 잘못내린 치매노인 대구까지 모시고 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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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얼마 전 연로하신 작은 아버지(77세)가 경기도 오산에서 나의 집에 오기 위해 동대구역까지 열차를 이용했다.

그런데 치매증세로 인해 충남 논산에서 내리게 됐다. 하지만 그곳에서 20대 중반의 청년 두 명을 만나 그들과 함께 동대구역까지 동행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동대구까지의 차비도 부담했고, 윗옷까지 벗어 작은 아버지를 덮어줬다고 한다.

역에 도착하자 작은 아버지의 양복 주머니에서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를 찾아내 내게 전화를 한 후 지하철을 이용, 최종 목적지인 상인역까지 모시고 왔다.

보통사람들이라면 귀찮아 거들떠 보지도 않거나 "할아버지, 이렇게 저렇게 가시면 됩니다" 라고 대충 얘기하고 가버렸을 텐데 말이다. '지금까지 나 자신 이런 부류에 속하지 않았을까 하고 반성하게 됐다.

고마운 마음에 이들에게 약간의 성의 표시를 하려 했으나 한사코 거절했다. 도리어 자신들의 주머니에서 1만원을 꺼내 작은 아버지에게 "용돈 하시라" 고 건네면서 "건강하세요" 라고 인사한 뒤 사라졌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태에 정말로 의로운 청년들을 만나게 돼 흐뭇했다.

김찬수.대구시 동구 신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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