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아, 폭주 뛰지마 … 절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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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①택시 블랙박스에 역주행하는 폭주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포착됐다. 순간 택시는 급히 핸들을 꺾고 있다. ③역주행 차량을 피하려던 택시가 뒤이어 오던 택시와 추돌 사고를 일으키는 장면. ③추돌 사고를 일으킨 택시가 가로등에 부딪혀 파손됐다. [서울경찰청 사진·동영상 제공]

손목에 수갑이 감겨 있었다. 20세 청년은 “다시는 운전대를 잡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최모(20)씨는 ‘역주행 폭주’로 지난달 29일 구속됐다. 검찰과 경찰은 처음으로 폭주 차량을 흉기로 판단,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적용했다. 최씨의 역주행으로 반대편 차로의 운전자는 이가 4대나 부러졌다. <본지 2월 3일자 16면>

3일 그를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최씨를 검거한 경찰관도 만났다. 그들의 말을 통해 폭주족의 즉흥성을 들여다봤다. ‘폭주족의 재미’가 타인뿐 아니라 그들 자신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안겨준다는 사실을 이 사건은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12월 19일 밤 최씨는 후배로부터 ‘뚝섬 살리는 날’이라는 휴대전화 문자를 받았다. 뚝섬은 폭주족의 집합지로 유명했다. 경찰의 단속으로 ‘죽어버린’ 뚝섬에 오토바이 50대와 승용차 4대가 모였다. 최씨는 친구의 차를 빌렸다. 면허는 없었다. 그날은 최씨의 생일이었다. 빌린 차는 ‘짜새 잡기’한 아반떼였다. 짜새 잡기는 차의 겉모양과 엔진 소리 등을 화려하고 요란스럽게 꾸미는 걸 의미하는 은어다.

최씨는 1월 19일 부사관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고교 졸업 후 1년간 취업을 못한 그에게 입대는 취업을 의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놀고 새 출발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조수석에서 함께 폭주를 즐긴 또 다른 친구 김모(20)씨의 입대일은 지난해 말이었다.

실력을 보여주는 데는 역주행이 최고였다. 그건 그들만의 콘테스트이며 게임이었다. 마침 반대편에서 차가 오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다칠 것을 알고도, 그것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알고도 최씨는 반대편 차로로 핸들을 틀었다. 쾌감이 몸을 파고드는 순간 사고가 났다. 최씨는 달아났다.

그날 아침부터 서울경찰청 폭주족전담반 장흥식 반장에게 제보가 오기 시작했다. 장 반장이 수사했던 폭주족들로부터 ‘사고가 났는데, 택시기사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장 반장은 당시 함께 폭주를 뛰었던 이들을 수소문해 진술을 받았다. 택시의 블랙박스에서 동영상도 확보했다.

택시의 블랙박스는 영상기록장치다. 일반적으로 차 안쪽 룸미러 뒤에 설치된다. 항공기 블랙박스와 달리 영상을 기록하는 장치여서 교통사고 상황을 정확히 알려준다. 이번 역주행 사건도 ‘영상 기록’이 없었다면 수사가 쉽지 않을 수 있었다. 서울시는 올해 말까지 택시 7만2000여 대에 블랙박스를 설치할 방침이다. 도로상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갈 곳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경찰은 ‘최씨가 운전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군 헌병대에도 연락했다. 당시 동승했던 김씨가 지난 연말에 군입대했기 때문이다. 수사팀은 헌병대에 요청해 김씨의 신병을 확보했다. 그리고 ‘최씨의 운전 사실’을 확인했다.

최씨는 처음에는 부인했다고 한다. 차를 빌려준 친구와 ‘동영상이 없으면 사고 난 줄 몰랐다고 하자’며 말을 맞췄다. 그러나 명백한 증거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최씨의 아버지는 경찰에서 “아비인 내가 저지른 일이다. 선처해 달라”고 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최씨는 자신이 저지른 죄가 무겁다는 사실을 알아갔다.

최씨는 친구들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폭주) 뛰지 말라고. 절대 말라고….”

하지만 뒤늦은 후회였다. 부사관 입대일은 보름이나 지나버렸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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