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통권 5백호 낸 '시사영어연구' 민영빈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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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잡지에 히틀러 사진은 게재할 수 있어도 마오쩌뚱(毛澤東)은 곤란하던 1964년 봄. 김동성(金東晟)공보부 장관이 후배인 한 잡지사 사장을 급히 호출했다.

"자네 정신이 있나 없나. 표지에 이런 사진을 쓰면 어떡하나. "

창간 4년째를 맞은 잡지가 미국 기자 에드가 스노의 마오쩌뚱 인터뷰 기사를 게재하면서 금기를 깨고 마오쩌뚱의 사진을 표지에 쓴 것. "당장 회수하게. 나는 봐주겠지만 '기관' 에서 뭐라고 하면 못 봐줘. "

그러나 "알겠다" 며 자리를 물러난 사장은 배포있게 잡지를 '배포(配布)' 했다. 그 고집스런 출판인이 바로 민영빈(閔泳斌.69)YBM-시사영어사 회장. 다행히 햇병아리 잡지라 검열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지만 까딱하면 지령이 멈출 수도 있었던 이 잡지가 '시사영어연구' 다.

그 잡지가 이달 통권 5백호 발행이란 경사를 맞았다. 우리나라 잡지 중 5백호 이상 발행한 잡지는 '현대문학' '고시계' '기독교사상' '새벗' 등 모두 5개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1백년된 출판사가 없습니다. 외국에는 역사와 더불어 8백년된 출판사도 있는데 말이죠. 5백호는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이를 성취했으니 이제는 '한 오백년' 쯤은 가야죠. "

61년 창간 때만해도 1천만원이 안되던 매출액이 40년 동안 2천억원으로 늘어났고, 시사영어연구를 모태로 영어학습 관련 자매지 7개에 학원까지 거느리게 됐다. 직원도 5천여명으로 불었다.

고려대 영문과를 나와 영자신문사 기자로 근무하던 閔회장이 출판인이 된 계기는 우연에 가깝다.

대학후배 한명이 찾아와 갓 창간한 잡지를 인수해 달라고 요청한 것. 대학시절 영자신문 편집장을 지낸 그는 막연한 자신감에 선뜻 수락했다.

인수 직후 5.16이 터져 미래가 불투명했으나 박정희(朴正熙)정부가 수출입국을 표방하면서 영어학습붐이 일어나 외국 잡지의 좋은 기사들과 에센스를 몽땅 모아놓은 이 잡지는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70년대 외국에 나가면 '시사영어연구로 공부했습니다' 라며 아는 체 하는 사람이 참 많았어요. 덕분에 공짜밥도 많이 얻어먹었죠. "

90년대 들어 출판계 불황에 세일즈맨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지만 1년 구독제.신용카드 결제 등의 아이디어가 먹혀 난국을 돌파할 수 있었다.

그러면 '영어왕국' 의 총수가 말하는 영어 잘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열심히 듣고 말하고 쓰고 읽고…. 쉽게 하는 길은 없어요. 그런데 다들 쉽게 하는 방법만 찾데요. "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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