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부채 금리인하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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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7월 초 농민단체가 '농가 보증채무 탕감' 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을 때 농림부는 이를 '반(反)시장경제적 발상' 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농가부채 대책은 어디까지나 부채 상환능력을 높이는 데 있으며, 부채탕감이나 삭감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농림부가 대통령의 지시로 15일 내놓은 대책은 부채의 상환연기나 금리인하 등이 골자여서 '사실상 부채삭감' 이나 다름없다.

이런 정책은 1998년 초 '원예.축산농가의 정책자금 상환연기 조치' , 98년 11월 '정책자금 및 상호금융의 대출금 금리인하 조치' 등 농가부채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내놓았던 단골처방이다.

아직 관계부처 협의 절차가 남아 있지만 농협 부채의 25%를 저리자금으로 대체해주는 이번 대책이 확정된다면 지난해 3월 고금리 부채가 있는 농가에 가구당 1천만원씩을 저리의 정책자금으로 대체해준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

물론 가구당 농가소득이 아직도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는 반면 부채는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 문제는 생산성 향상, 고부가가치 농업, 농산물유통 개선 등의 과제들보다 훨씬 절박한 문제임은 분명하다.

실제로 농산물 수입개방 등의 영향으로 농가의 판매소득은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시설투자비용.인건비.원료비 등 농업에 투입되는 비용은 갈수록 상승하고 있는 상황이다.

농가인구의 고령화로 취업가능인력이 고갈돼 농업외 소득이 줄어들고 있는 점도 심각한 부분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동안 수없이 부채경감 등의 조치를 취했음에도 부채는 더욱 늘어난다는 점이다.

농림부는 이에 대해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시설투자가 뒤따르고 그러면 당연히 부채 규모는 늘 수밖에 없다" 면서 "이 경우 부채 규모가 아니라 상환능력으로 부채문제를 봐야 한다" 고 설명한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상환능력의 지표인 연체비율이나 자산 대비 부채비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농가의 실질소득이 96년 수준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상환능력이 좋아졌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며 "직불제 등으로 최소한의 안정기반은 정부가 마련해 주되 교육.기술지도.정보제공처럼 경쟁력 강화를 위한 간접적 인프라에 농민지원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고 말했다.

걸핏하면 빚 깎아주며 돈으로 농민들을 달래기보다 농민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 여건을 만들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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