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때 지은 지명 아직도 전국 곳곳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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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통합시 이름 짓기가 진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전국 곳곳에는 일제강점기 때 생겨난 일본식 지명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민족정기 회복을 위해서도 일본식 지명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있어 왔지만 그동안 별 진전이 없었다.

대표적인 곳이 경제특구 개발이 한창인 인천 송도. 조선총독부는 1937년 소나무 숲이나 섬과 상관없는 곳을 송도정(松島町·마쓰시마초)으로 명명했다. 본래 지명은 인천부 옥련리였다. 일제는 송도정 외에도 인천의 40여 곳을 일본 군함이나 해군 제독의 이름을 따 지었다. 송도호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모두 참전한 일본 해군의 순양함이다.

광복 직후 옥련동은 옛 이름을 되찾았다. 그러나 송도유원지의 명성 등으로 송도는 여전히 시민들에게 익숙한 지명으로 남았다. 이곳 앞바다를 메운 터에 송도국제도시 개발이 본격화되던 2005년 지역 시민단체는 ‘일제 잔재’라며 ‘송도’ 지명의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인천시와 연수구는 “이미 굳어진 이름으로, 주민들도 원한다”며 송도동으로 확정했다. 인천 향토사가 조우성(62)씨는 “광복 직후 애써 지워 놓은 일제 잔재를 인천시가 부활시켜 놓은 꼴”이라고 비판했다.

경북 칠곡군의 왜관읍(倭館邑)은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역 이름을 왜관역으로 명명하면서 지명으로 굳어졌다. 장영복 칠곡문화원장은 “한때 지명 변경이 검토됐지만 조선시대에도 왜관이라는 이름이 있었고 비용도 만만찮아 보류됐다”고 말했다.

울산시 방어동 울기등대의 ‘울기(蔚崎)’는 ‘울산의 끝’이란 뜻의 일본식 표기다. 원래 ‘댕바위’였으나 1904년 러일전쟁을 앞두고 이곳에 주둔한 일본 해군이 이름을 바꾸었다. 충남 홍성군은 고려 이후 홍주로 불렸으나 1914년 일제가 일본어 발음상 공주와 구별이 안 된다는 이유로 바꾼 이름이다. 부산시 서구 대신동은 일제 때 일본인들이 몰려들면서 ‘크고(大) 새롭다(新)’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그 이전에는 ‘한새길’로 불렸다.

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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