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도 과학교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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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의·오동원·한문정(왼쪽부터) 교사가 범죄 관련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루미놀(진단시약)을 이용해 혈흔 반응을 관찰하고 있다. [황정옥 기자]

교사들이 과학 영화와 드라마에 빠졌다. 영상을 보며 부지런히 메모하고 끝난 후에는 관련 책을 뒤적인다.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서울·경기 과학 교사들 모임)’ 중 ‘영과사’ 회원들이다. 이들은 학생들의 과학 흥미를 끌어내기 위해 방학이면 하루 대여섯 편씩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연구한다.

글=박정현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도입에 활용하면 학습 내내 집중력 높아

오동원(서울 숙명여고) 교사는 3년째 방과후교실과 동아리 활동시간에 드라마를 활용하고 있다. 과학적 내용이 많이 나오는 미국 수사드라마 ‘CSI 과학수사대’를 보다 학생들도 재미있어 하겠다 싶어 시작했다. 홍준의(한성과학고) 교사는 ‘실험’ 과목시간에 영화를 이용한다. 홍채 인식에 대한 문제가 대두됐을 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터’를 보여주고 소의 눈을 해부한 적이 있었다. 한문정(서울 숙명여고) 교사는 화학Ⅰ 공기 단원에서 지구 온난화 문제를 다룰 때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을 끌어왔다. 그는 “과학 영화를 수업 도입부에 활용하면 흥미가 높아지고 개념 이해도 빠르다”며 “미국에선 이미 방과 후나 여름방학 프로그램에 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 교사는 지문으로 범인 잡기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여러 지문들 속에서 범인 역할을 한 학생의 지문을 분석해 찾아내는 것.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일란성 쌍둥이도 지문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유전자 수업까지 확장할 수 있었다. 한 교사는 “실험 장면이 나오거나 교육적 의미가 있는 영화를 활용하면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오 교사는 “교과와 연결하면 학생들이 더 흥미를 갖고 집중한다”고 말했다.

먼저 내용 확인해 교육 목적 적합한 지 확인

한문정 교사는 “영상 세대인 아이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끌면서 과학과 사회, 기술의 연관성을 보여주기에 영화만 한 소재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즐겨보는 영화와 드라마는 CSI·별순검·KPSI·하우스·외과의사 봉달이·빅뱅이론·일드 인 갈릴레이 등이다. 그러나 반드시 과학 관련 영화가 아니어도 된다. 한 교사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고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는지 호르몬의 변화로 알아보거나, 영화 ‘향수’를 보고 확산과 추출 개념을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CSI의 경우 과학 관련 내용은 많지만 청소년 관람 불가 수준이다. 그래서 오 교사는 스토리를 얘기해주고, 실험 관련 동영상만 보여준다. 드라마나 영화가 목적이 아닌 수단에 그쳐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교사나 부모가 먼저 매체를 확인해 교육 목적에 맞는 것을 찾아야 한다.

이런 방식의 교육은 가정에서도 따라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과학 1단원 과학의 탐구에서 배우는 ‘과학이란 무엇이며 과학자는 어떤 일을 하는가?’를 영화 ‘콘택트’를 활용해 공부해 볼 수 있다. 아이와 함께 영화를 본 후 내용을 확인한다. 그 다음 ‘우주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할까? 왜 그렇게 생각하지?’ 하고 질문을 던져 생각을 확장시킨다. 등장인물의 생각이나 가치관에 대해 말해보는 것도 좋다. 주인공을 통해 느낀 점을 중심으로 과학자가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이고 과학과 사회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하게 하면 흥미를 유지하며 공부할 수 있다.

‘영과사’ 교사들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어떤 과학이 숨어있을까 관심을 갖고 찾는 연습을 해볼 것”을 권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과학이 우리 문화 속에 숨어있고,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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