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 나의 하루] 대중예술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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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남북한 화해.협력시대를 맞아 서로간의 이질감을 줄이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의 운동선수.의사.교원.노동자.농민 등 각계각층 주민들의 일상을 엿보는 기획연재를 통해 '50년 삶의 거리' 를 좁혀보고자 한다.

조선인민군 교예단의 요술과장으로 있는 김광석(42)씨는 그 직함이 말해주듯 관중들을 환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마술사다. 교예단의 규모는 30여명 정도.

그는 군 복무 중 오락회에서 우연히 재능을 인정받아 1987년 국제현대요술축전에 나가 최고상을 받게 됐다. 그후 이 분야의 최고 엘리트들에게만 주어지는 '인민배우' 칭호까지 받았다.

대중매체가 흔치 않은 북한에서 마술가의 인기는 대단하다. 특기인 '담배 재주' 와 '불 속에서의 조화' 를 열연할 때면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 '오빠부대' 로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교예극장은 평양에만 두 곳이 있는데 입장료(성인기준)는 5원 정도. 북한 돈 1원이면 한국에서 5천원 정도의 값어치가 있으니 만만치 않은 액수다.

그는 최근 들어 마술을 연극처럼 연결해 공연하는 '요술극' 을 연구하느라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새롭지 않으면 당과 주민들로부터 외면당하기 때문이란다.

교예단원.가수.영화배우 등 TV나 무대에서 인기를 먹고 사는 북한의 예술인들도 청소년들에겐 선망의 대상이다.

출신 성분을 덜 따져 재능만 있으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 신분인 이들은 인민배우.공훈배우를 비롯해 무급~8급까지 나눠지며 월급은 60~1백50원 정도.

이밖에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나 당 간부들로부터 공연 후 사례금을 받는가 하면, 가족.친지들의 취직을 알선해 줄 만한 '특권' 도 누릴 수 있다.

이들 역시 오전 7시까지 소속기관에 출근해야 하고 매주 월요일이면 김일성 동상 앞에서 '충성 선언서' 를 목청껏 읽는 것으로 한 주일을 시작한다. 예술인도 '당에 대한 끝없는 충성' 에선 예외가 아니다.

신입 예술인에 대한 고참 선배들의 지도는 혹독하다고 한다. 어디서나 그렇듯 바닥청소나 물 심부름은 당연히 신참들의 몫이다.

95년 서울에 정착한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출신 신영희(39)씨는 "피바다 예술단 시절 연습하다 한 명만 틀려도 밤새도록 단원들끼리 김일성을 비판한 사례가 없었는지 찾느라 한 숨도 못 잤다" 고 말했다.

예술인은 격일제로 30분 정도의 '2일 총화회의' 를 연다. 당비서와 청년동맹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자기 자신과 동료들을 비판하는 시간이다.

매일 반복되는 긴장 속에서도 즐거움은 있다. 1년에 한 달쯤 지방공연을 나가기 때문이다. 예술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고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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