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와 10시간] 돌아온 '들국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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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울다 보면 듣고 싶은 노래가 있고,듣다 보면 울음이 나오는 노래가 있다.

서소문을 지나 덕수궁으로 걸어가는 길. 전인권을 만나러 가는 가을 도심의 길 위에서 그와 그룹 들국화의 노래들을 떠올렸다.

이윽고 그리운 노래들이 마치 옆에서 연주라도 하듯 귓가에 울려퍼졌다.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사랑한 후에' ‘돛배를 찾아서’ ‘사랑일 뿐이야’….

코트 깃 사이로 차가운 초겨울의 공기가 스며들었다.깃을 곧추세우자 노래들은 공기 속으로 사라졌고 문득 눈 앞에는 전인권-그 ‘거인’이 서 있었다.

들국화 결성 이후 17년.그 영광과 절망의 세월을 헤쳐온 한국적 록의 황제 전인권이 들국화와 함께 다시 우리 곁에 돌아왔다.

“콘서트 해야죠.계속 할 겁니다. 소리가 갈라지고 목이 잠기더라도,터져라 죽어라 외쳐 부르는 노래,그게 노래고 록입니다.”

지난 9월 예술의 전당 야외 콘서트홀의 컴백 공연,지난달 대학로 학전 소극장의 17일간 장기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전회 매진. 그의 노래를 들을 수만 있다면 임시 좌석의 불편함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10대 청소년부터 50대 장년까지, 박수와 환호성 속에 공연의 열기는 엄청났다.

전인권은 들국화 공연 8백여회를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2천7백여회 라이브 공연을 했다.립싱크? 녹음 테이프를 트는 록공연? 턱도 없는 말이다. 얼마전 들국화의 최성원과 함께 요즘 최고 인기인 한 후배 가수의 공연장을 찾았던 그는 두 곡을 들은 뒤 공연장을 빠져 나왔다.

“몹시 실망했어요.기대가 컸는데.무대와 기획은 훌륭하더군요. 그치만 어찌 됐든 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여야죠.한번 나라를 뒤집어 놓기를 기대했는데….”

그 가수란 서태지를 말한다.그는 이야기에 거침이 없었다. 여느 대중 문화인들처럼 애둘러 감춰 말하는 법이 없었다.좋으면 좋고,싫으면 싫고,모르겠으면 모르는 것이다.

“들국화 새 앨범은 늦어도 내년 가을엔 나옵니다. 많이 준비됐어요.국악을 최대한 접목할 겁니다.그러면서도 팝적인 요소를 충분히 살리고요.

그가 국악을 처음 배운 것은 들국화 해산 이후 혼자 활동하던 1990년. 김덕수 사물놀이 패로부터 북과 국악 이론을, 소리꾼 조영재로부터 2년여 동안 창을 배웠다.

지난해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된 그.재판부는 “국악을 대중적으로 규격화해 세계적인 대중음악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한 점”을 들어 벌금형으로 풀어줬다.

그는 87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4번 옥살이를 했다. 대마초 흡입등이 원인이었다. 그는 요즘 사람들을 만나 대마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앞으로 5년은 안 피우겠지만 그후엔 모른다”고 말한다.

5년 동안 안피우겠다는 말은 곧 '이제 그런 것과는 이별'이라는 의미를 담은 전인권식 수사로 들렸다.

다음달엔 그에 대한 헌정 음반이 나온다.평론가 강헌이 제작을 지휘하고 김장훈·윤도현 등 그가 좋아하는 후배들이 그의 노래를 하나씩 부른다. 내년엔 일본에서 들국화 음반을 내고 콘서트도 할 계획이다.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고 했다. 약 5초 동안 고개를 숙이더니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그날이 다시 온다,이렇게 전해주세요.전인권과 들국화에 열광하던 그날,들국화를 자랑스러워 하고, 들국화를 좋아하던 자신과 친구들을 자랑스러워 하던 그날이 꼭 온다고 말해주세요. 꼭 다시 올겁니다.”

98년 당시 들국화 등 옛 록 그룹들의 컴백 준비 소식에 어떤 평론가는 “이들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건 추억 뿐이다.재회는 반갑지만 무조건 환영할 일은 아니다”고 적었다. 그 평이 엉터리였음을, 혹은 성공을 바라는 채찍질의 가장이었음을 전인권과 그의 벗들이 증명할 것으로 믿는다.

▶전인권과 만남에 대한 보다 상세한 이야기는 조인스닷컴 기자포럼(http://club.joins.com/club/jforum_cjh/index.html) 에서 볼 수 있습니다.

최재희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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