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바이러스와 반세기 (2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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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25. 긁어 부스럼

쥐는 엄청난 대식가이다. 쥐 한 마리는 하루 평균 40그램의 곡식을 먹어치운다. 내가 계산해보니 1년간 우리나라 쥐가 먹는 곡식은 42만8천톤에 달했다. 이는 한 해 국내 쌀 생산량의 7%에 해당하는 양이다.

그러나 쥐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하는 보다 중요한 이유는 쥐가 옮기는 각종 질병 때문이다. 페스트는 중세 유럽인구의 4분의1이 넘는 1억2천5백만명을 죽게 하지 않았는가.

식량을 갉아 먹는다든지 질병을 퍼뜨리는 등 쥐는 실험용 쥐를 제외하곤 한마디로 인간에게 유해한 동물이다.

독자 여러분은 혹시 60.70년대 우리나라에서 전국적으로 실시됐던 쥐잡기 운동을 기억하는지. 당국에서 집집마다 반상회 등을 통해 쥐약을 나눠주고 신문과 방송을 통해 쥐잡기를 독려하곤 했다.

먹을 것이 떨어져 궁핍하기 이를 데 없었던 시절 쥐에게 빼앗길 식량조차 아까웠으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처럼 한 마리씩 잡아 쥐를 박멸하기란 불가능하다.

쥐는 번식력이 강해 웬만큼 잡아도 이내 다시 늘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히려 위생을 청결히 하고 쥐가 먹을 음식물을 남기지 않는 등 쥐의 번식 환경을 파괴시키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다.

요즘 도심에서 과거처럼 쥐를 자주 보기 어려운 것도 굳이 쥐를 잡지 않아도 위생 등 주거환경이 청결해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쥐는 먹을 것이 없으면 자기들끼리 잡아먹다가 5일 정도 지나면 굶어 죽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는 쥐의 집단박멸에 대해 과학적인 접근이 이뤄지지 않았다. 군사정권 아래서 성장 일변도로 치닫던 때라 쥐 역시 눈에 보이는대로 없애면 된다는 단순도식을 따랐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많았다. 쥐약이 섞인 음식을 어린이가 잘못 먹고 생명을 잃는 사건이 잇따르기도 했다. 유행성출혈열과 같은 질병도 쥐를 잡느라 부산을 떠는 가운데 늘어난 대표적 질환이다.

1976년 경기도 연천에서 벙커를 설치하는 작업을 하던 26사단 75연대 군인들 7명에게 집단으로 유행성출혈열이 발생해 2명이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원인 규명차 현장에 달려간 나는 이내 유행성출혈열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작업을 한 곳은 언덕이었는데 당시 언덕 윗쪽 벙커에서 일 하던 군인들만 감염된 것이었다. 아래 쪽에서 땅을 파던 군인들은 모두 무사했다. 땅을 모두 파보니 한국전쟁때 숨진 중공군들의 시신들이 나왔다.

그리고 주변엔 시신을 뜯어먹기 위해 여기저기에 등줄쥐의 집들이 발견됐다. 문제는 바람이었다. 그 일대는 항상 바람이 언덕 아래에서 윗쪽으로 불었다.

결국 아랫 쪽에서 땅을 파는 가운데 등줄쥐의 소변으로 배설된 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떠있다가 바람을 타고 위로 옮아간 것이었다.

아랫쪽에서 시신을 파내는 궂은 일을 하던 병사들은 괜찮았고 상대적으로 윗쪽에서 쉬운 작업을 하던 병사들이 희생된 것이다.

문제는 이 사건이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됐다는 것이다. 육군에서 이 사건 이후 대대적인 들쥐 소탕령을 내렸다. 군부대 내에 들쥐란 들쥐는 눈에 보이는대로 잡아 죽였다.

사병들도 쥐의 꼬리를 많이 갖고 오면 휴가를 더 많이 보내주므로 결사코 쥐를 잡았다. 아니나다를까 후유증은 이내 나타났다. 그 다음해부터 유행성 출혈열이 줄기는 커녕 오히려 군인들 사이에 2배나 늘어난 것이 아닌가.

이들 환자는 대부분 쥐를 잡는 과정에서 숨쉬는 공기를 통해 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만히 있었더라면 괜찮았을텐데 오히려 긁어부스럼이 된 것이다.

이호왕 <학술원 회장>

정리=홍혜걸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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